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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방망이처럼 변신을 잘하는 바지입니다. 남편이 이 바지 한 장이랑 훈제 치킨 두마리를 바꿔왔습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변신을 잘하는 바지입니다. 남편이 이 바지 한 장이랑 훈제 치킨 두마리를 바꿔왔습니다. ⓒ 주경심
"뭐야?"
"훈제 치킨!! 그것도 한방 훈제 치킨 두 마리!!"
"와아!!!"


아이들과 저는 합창하듯 환호를 지른 뒤 봉지를 펼쳤습니다. 말로만 듣던 훈제 치킨!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할 때, 남편의 가방에서 쓱 고개를 내민 건 바로 맥주였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날은 무슨 맨날 늦게 오는 나 때문에 고기도 못 먹는 것 같아서…. 많이 먹어!!"


많이 먹으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혼자서 두 마리는 너끈히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요? 자식 목구멍에 밥 넘기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다고. 저 역시 부모인지라 새끼제비처럼 입을 쩍쩍 벌리는 아이들의 입으로 닭을 찢어서 넣어주다 보니, 저는 뼈만 앙상히 남을 때까지 쩝쩝 입만 만 다셔야 했습니다. 물론, 그래도 행복했지요.

치킨 한 마리도 많아서 너 먹어라, 더 먹으라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 마리도 부족할 만큼 먹성도, 식성도 좋은 두 아이의 부모라니…. 감회가 새로워 배고픈 줄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유난히 고기 좋아하는 제가 많이 먹지 못한 걸 본 남편은, 감동의 물결에 온몸을 맡기로 허우적대는 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제 모습이 안돼 보였던지 "내일도 가져올까?" 하더군요.

"내일도? 비싸잖아!"

고맙지만 어떻게 매일 고기로 식사를 때우겠어요. 그래서 한발 양보하며 물었지요.

"안 비싸! 바지 한 장이랑 바꿨거든."
"정말?"


남편은 옷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장을 얻어서 번듯하게 장사를 하면 좋겠지만, 경기가 나빠진 탓에 한자리에서 장사를 한다는 건 웬만한 단골고객을 확보한 매장이 아니고서는 제 살 깎아 먹는 식이기에, 매장을 빌리는 돈으로 더 좋은 옷을 보충하고 대신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 목 좋은 곳으로 다니며 장사를 하는 일명 노점을 하고 있지요.

처음 노점을 하겠다고 남편이 할 때는 노상에 서서 직접 손님을 대하고 장사를 해야 하는 남편보다 그런 남편을 바라볼 사람들의 얄궂은 시선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면 되는 제가 세상 물정 모른 채 극구 반대를 했었지요.

남편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 부끄러울 것 없다며, 저를 다독인 뒤 노상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노상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남편 말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하는 남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제 걱정이 기우임을 말해주듯 그리 많지도 얄궂지도 않았습니다.

양말, 치킨, 뻥튀기, 모자, 속옷, 등산복, 과일 등….

성격 좋고, 사람 좋아 뵈는 남편은 보이는 인상이 말해주듯 누구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모나지 않고, 튀지도 않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바지랑 바꾸어 왔다는 치킨 두 마리도 실은 항상 쪼그려 앉아서 훈제 닭을 구워야 하는 아저씨가 편하게 입을 바지가 필요해서 사겠다는 걸, 남편이 물물교환을 제안해서 가져온 거라고 합니다.

치킨 파는 사람이 매일 치킨만 먹을 수 없고, 옷 장사라고 매일 옷만 쳐다보고 있을 순 없는 거 아니냐며 말이지요. 그러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치킨 아저씨 역시 흔쾌히 좋다고 했다네요.

그런 남편 덕에 하루는 모자하고 바꿨다는 쌀가마니만 한 뻥튀기를, 또 하루는 티셔츠랑 바꿨다는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한과를, 또 하루는 바지랑 바꿨다는 튀김 닭을 배불리 먹기도 했지요.

노점 장사하는 남편

모자하고 바꿨다는 뻥튀기입니다.
모자하고 바꿨다는 뻥튀기입니다. ⓒ 주경심
그 뒤로 남편의 전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치킨, 뻥튀기, 양말' 하는 발신자를 표시하며 울어대기 바빴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장사지만 장사도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돈보다 사람이 더 귀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 바로 노점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눈에 남편은 썩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던 가봅니다.

"김 사장! 오늘은 어디서 장사해? 김 사장 옆으로 갈까 하는데…."

서로 사장이라고 깍듯이 존중해주는 그분들의 관심이 노점을 반대했던 제 귀에도 요즘은 좋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편의 모습도, 노점이 법은 조금 어길지언정 사람 사이의 인정 하나만은 끈끈하게 만드는 고리인 것 같아 듣기가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떡하지요? 몇 번 재미를 봐서인지 요즘은 은근히 저녁 무렵이면 자동으로 전화기 옆에서 붙박이가 된 채 남편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날씨도 꾸물꾸물한 것이 오늘은 지난번에 먹었던 한방 훈제 닭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물론 바지 한 장이 희생을 해야겠지만요.

참,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간적인 장사꾼의 아내로서 제발 노점에서 가격 깎지 좀 마세요! 백화점에서는 가격표대로 다 주고 사는 사모님들도 노점에만 오면 무조건 깎아달라고 우기시거든요. 달라는 대로 주고 사셔도 절대 손해 안 보는 곳이 바로 노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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