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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변호사 생활을 6년 동안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로 노동사건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소송대리를 하고 있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천시에 있는 쥐치 등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가 사용자 소유의 통근 승합차를 이용해 출근하던 도중, 운전자의 과실로 승합차가 추락하여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였던 사건이었다.

이 사고로 여성 노동자는 뇌진탕, 경추염좌, 다발성 좌상, 파열 외측 반월상 연골 슬부 좌측, 좌측 슬관절 활액막염, 외상 후 증후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상해를 입었다. 물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산재처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사용자가 단 한 푼의 보상도 하지 않았던 관계로 산재 보상 이외에 별도로 사용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여러 번의 신체감정을 거쳐 '외상 후 증후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으로 18%의 노동능력 상실과, '좌측슬관절의 외상'으로 7%의 노동력상실율을 감정 받았다.

이에 따라 피해 여성 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휴업급여 및 향후 지급받을 수 있는 장해급여 등을 고려하여, 정신적 손해인 금 1000만원을 최종적으로 청구하였다. 1년이 넘는 재판과정이었다.

재판은 이제 선고만을 남기게 되었는데 법원에서 조정하자고 하였다. 조정은 쌍방 당사자가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하면 그것으로 재판이 끝나는 법정 화해 제도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난 법원이 정한 날짜인 지난 13일 오후 00지방법원 00지원에서 열린 조정기일에 참석을 하였다. 오후 3시가 돼도 조정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 왔나 싶어 여러 번 통지서를 보아도 이 장소가 맞았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법원 직원이 10분이 넘은 시각에 와서는 미안하다는 한마디 없이 어떤 사건은 이쪽으로 가고 다른 사건은 저쪽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기하라는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해 조정 위해 오라고 할 땐 언제고...

그런데 조정하러 들어온 사람이 처음 본 판사였다. 누구인지 궁금하였는데 자기소개도 없이 재판을 진행하기에 가만있었다. 그 판사는 상대방 사용자에게 얼마를 지급할 수가 있는가를 물었다.

사용자가 머뭇거리면서 판사가 듣고 싶었던 금액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면서 한 푼도 지급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판사가 "도의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얼마를 지급할 수가 있는가?"를 재차 물었다. 사용자가 이에 "한 200만원 정도는 지급할 용의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판사는 그 사람을 잠깐 밖에 나가있으라고 하였다.

난 매우 의아해 있었다. 판사가 "도의적 책임"을 운운하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재판은 '도의적 책임'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조정기일은 쌍방 의사가 합치되도록 설득하는 장소인데 상대방을 나가라고 하다니 참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가자 대뜸 판사가 나에게 "변호사님, 이 사건은 기각할 것인데 200만원에 어떻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기각 협박을 통한 조정 성립 시도였다. 기가 막혔으나 인내심을 가지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기각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자 판사가 "상당인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사용자 책임이 명백하게 있는 사안이다, 재산상 손해를 청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 손해 부분만을 청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조정이 성립 안 되면 판결을 선고하면 그만인 것이고, 자기들이 기각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였으면 기각을 하면 되는 것이지 왜 기각을 할 테니까 이 선에서 받아들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판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기각을 할 테니 받아들이라니 무슨 소리냐? 그것이 조정기법이냐, 이 문제는 크게 문제 삼을 것이다, 변호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기각해라" 하면서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판사의 때아닌 기각 협박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밖에 나와서는 분노에 복받쳐 한 동안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변호사에게 기각할 것이니 조정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지, 판사의 그 대담무쌍한 뻔뻔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 문제를 어떻게 공론화할 것인지 등으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변호사는 법조삼륜(法曹三輪)이 아니다. 이점에서 대법원장의 발언에 동의한다. 법조삼륜이라는 말은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사법을 이끌어 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아무런 권력도 가진 것도 없고 민사소송에서는 당사자를 대리하는 지위에 있지 결코 판사와 대등한 지위에 있지 않다. 형사 사건에서는 더욱이나 열악한 지위에 있다.

검사는 수사 권한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인신 구속과 각종의 강제집행 마음먹은 대로 할 수가 있다. (간혹 판사들이 제어하기는 하지만). 이에 반해 변호사는 검사가 수사한 기록을 보고 무슨 허점이 없는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은 없는지를 찾는 것이 고작이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인 한 사람을 찾았다고 하여 그 사람을 증언대를 세우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 중의 하나이고 설사 증언대에 세웠다고 하여 안심할 수도 없다. 판사가 그 증언을 믿을 것인가도 의심스럽지만 더욱 애를 태우는 것은 증언을 한 사람들을 '위증죄'로 검사가 수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을 위증죄로 수사하여 처벌받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민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노동사건의 경우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사람을 찾는 것은 더욱이나 어렵다. 증언을 하였다고 하여 사측에서 제시한 증인의 증언보다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판사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결국 형사사건이든 민사사건이든 판사가 사건을 좌지우지 하는데 일개 당사자의 대리인 또는 변호인 지위에 있는 변호사가 판사와 대등한 지위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판사가 결정한 것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 한다'고 하지 않는가. 변호사는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불복할 권한밖에 없다.(이것도 권한인가. 변호사 아니어도 당사자이기만 하면 불복할 권한이 있는데) 그래서 변호사는 항상 약자의 지위에 있다. 사건에서 이길 것인지 질 것인지에 따라 의뢰인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칭찬을 듣기도 한다. (제1심에서 이겼는데 제2심이나 3심에서 지면 칭찬이 욕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건의 결과에 전전긍긍하고 행여나 판사가 기각을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판사의 부당한 언사에 대해서도 웬만한 것은 그냥 넘기면서 재판을 숨죽이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잡아 "기각할 것이니 조정 금액을 받아들여라"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 조정에 대해 그 동안 변호사들은 많은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조정할 사안도 아닌데 무리하게 조정을 붙이고, 조정을 안 받아들이면 조정에서 제시한 것보다 더 낮거나 또는 기각을 감수하기 싫어 억지로 조정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구속된 조관행 전 판사의 사건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당하고 보니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판사가 약자인 변호사의 약점을 잡고 협박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인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하는데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말을 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임용 2년도 안 된 판사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

요즘 법원이 많이 좋아졌다. 재판대에 삐딱하게 앉아서 변호사들에게 반말 비슷하게 하는 재판장들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한참 어린 판사가 반말하는 것도 (특히 형사재판에서) '요즘은' 보기 힘들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원을 만들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직 한 참 먼 모양이다.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한 판사는 임용된 지 2년이 채 안된 예비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판사가 이 정도의 말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법원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대법원장의 말로 인해 법조계가 시끄럽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공판중심주의와 구술변론주의를 실현하겠다고 하면서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대법원장도 대법관을 하다가 변호사 생활을 5년 동안 한 사람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감출 의무가 있고, 유리한 사항은 적극적으로 주장할 권리가 있는 직업이다. 그렇지 않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필요 없고 원님이 앉아서 "네 죄를 내가 알렸다"하고 취조하고 판결을 하는 원님 재판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박훈
박훈
대법원장의 변호사들에 대한 이런 비하적 인식이 그 예비판사한테 전염되었을까. 변호사는 돈이나 밝히고 남을 속이려 드는 사람 정도이니까 그런 식으로 말해도 저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판사인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다는데 변호사 니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필자가 그 자리에서 선택할 것은 두 가지뿐이다. 부당한 요구에 응하든지 아니면 기각을 감수하고 박차고 나오든지. 난 박차고 나왔다. 의뢰인에게 무슨 말을 할까. 참 처참하다. 이놈의 변호사 생활 그만 때려치울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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