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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낮 12시 국회의원 동산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여성보좌진들. 사진 왼쪽부터 박영선 보좌관, 이민정 비서관, 김연숙 비서관.
10월 9일, 낮 12시 국회의원 동산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여성보좌진들. 사진 왼쪽부터 박영선 보좌관, 이민정 비서관, 김연숙 비서관. ⓒ 우먼타임스
국회 생활 6년차 고참인 이민정 비서관(34·김희정 한나라당 의원), 이 비서관과 동갑내기인 박영선 보좌관(34·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신참 김연숙 비서관(32·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

이들은 모두 국정감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라 지난 추석 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국회 생활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책상 가득 쌓인 서류철,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을 잠시 뒤로 하고 사무실을 벗어난 세 사람은 오랜만에 가을 햇살 가득한 국회 의원동산 뜰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정말 바쁘겠다.
이민정 "결혼 7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없어요. 대학원 공부하랴, 일하랴 너무 바빠서 아이 갖는 걸 미루고 있어요. 퇴근 시간은 6시지만, 거의 매일 밤 9~10시가 되어야 일이 끝나요.

1시간이라도 일찍 가려면 저녁식사를 사무실에서 컵라면이나 빵 같은 걸로 얼른 때워야 하구요. 회기 중이나 국감 기간엔 날을 새는 일도 다반사예요. 각 피감기관별로 질의서와 자료를 만들어 보내고, 그에 대한 답변서를 받아내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다시 추가 질의서를 보내지요.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정부 정책을 꼼꼼히 살피고 문제점을 발견해서 대안까지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박영선 "지난 2004년 첫 국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밤 10시쯤 집에 들어가서 아이를 재우고, 자정에 다시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다 새벽 3~4시에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아침에 또 출근했어요. 정말 강행군이었죠."

- 여성들에겐 국회 문이 높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국회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김연숙 "국회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 됐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 인터넷에서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용케 일하게 됐어요. 정치인 홍보 업무를 해보고 싶었는데, 앞으로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요."

이민정 "결혼하던 해인 2000년에 이주영 의원(한나라당) 9급 비서로 들어왔어요. 당시 친정이 경남 창원이었는데 총선 때 이 의원을 도운 인연으로 국회에 들어와서 이후 17대 때 김희정 의원 6급 정책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박영선 "오랫동안 KBS 노조에서 노보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어요. 17대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만큼 도움이 되고 싶어 지원했어요.

- 일을 많이 하는 의원과 함께 하면 덩달아 고생할 것 같다.(웃음) 보좌진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이민정 "이번 하반기엔 과기정위, 운영위에다 예결위까지 맡았어요. 운영위는 피감기관이 몇 군데 안 돼 괜찮은데, 다른 상임위 국감 일정이 11월말까지 연달아 있어서 12월까지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세 번째 맞는 국감이라 밑천이 떨어진 것도 걱정되네요."

박영선 "첫 국감 때는 '숫자놀음'식 문제제기에 그쳤지만 이번이 세 번째인 만큼 대안 제시도 해야 하고 가장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덕분에 전문성은 좀 더 길러진 것 같은데….(웃음)"

이민정 "국회에 6년째 있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개인적 판단을 내리는 게 어색해진다는 것이죠. 의원 중심으로 생각하고, 의원 결정에 따르는 게 어느새 익숙해진 거죠."

- 깊은 성역할 고정 관념이 팽배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연숙 "그나마 17대 들어서는 의원사무실 문화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어지고, 국회 내 함바집 같은 데서 의원과 보좌진이 함께 어울려 식사도 하구요. 커피, 카피, 콜로 대변되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도 많이 희석된 것 같아요."

박영선 "하지만 의원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의 인식은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피감기관 공무원이나 민원인들이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면 꼭 남성 보좌관을 찾거든요. '제게 말씀하세요'라고 해도 '보좌관은 어디 갔느냐'며 못 들은 척 되묻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제게 '사람 없어요?'라고 하더라니까요."

이민정 "맞아요. 상석 개념이 사무실 안쪽이다 보니까 우선 쑥 들어가서 남성 보좌관을 찾지요. 여성 비서관, 보좌관은 못미더워하는 눈치구요."

- 국회가 오히려 모성보호의 사각지대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여성 보좌진의 모성권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보는가.
이민정 "생리휴가는 거의 사용하지 못해요. 육아휴직은 의원실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여성의원 사무실에서는 그래도 육아휴직을 챙겨주지만 남성의원 사무실의 경우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봐야죠.

국회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처우 조건이 의원에게 맞춰져 있어요. 생리휴가, 고용보험 같은 법적 보장도 없고, 면직권도 의원에게 있어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존재죠. 사명감이 없으면 순간순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아마 당별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박영선 "민주노동당은 남녀 보좌진, 당직자 모두에게 육아휴직이 의무화되어 있어 다른 당에 비해 그나마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엔 국회 업무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모성권 보호는 구호에 그치고 마는 것 같아요.

국회 모성권 보호를 위해 상징적 의미로 김희정 의원님이 하루빨리 아이를 가지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저랑 함께 국회 어린이집에 아이도 맡기고.(웃음) 여성 의원이 배부른 모습으로 회의장에 있으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도 클 것이라고 봐요."

김연숙 "저는 아직 미혼이라서 육아문제나 가정 문제에서 자유롭긴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고심하면서도 정작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국회가 여성 보좌진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국회에 들어오고 싶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회 보좌진이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박영선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보좌진들은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관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데, 자신이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해요.

국민의 편에서, 특히 소수자의 편에서 법안과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역지사지 입장을 취해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해요."

김연숙 "독특한 아이디어와 대안 제시 능력, 이 두 가지가 필수라고 생각해요. 양성평등 사회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입법기관인 국회에 여성들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정책 입안은 매우 섬세한 작업이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꼼꼼한 여성들에게 아주 잘 맞는다고 봅니다."

이민정 "제가 느끼는 것은 첫째,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질의서를 쓰다 나왔는데, 아무리 문제의식이 날카로워도 적절한 표현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전달이 되지 않거든요. 미국에서는 보좌진을 '미들맨'이라고 한다더군요. 의원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의원이 제시하는 정책에 대한 고민을 법안으로 잘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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