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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만취 운전을 했다고 감정결과가 나와 너무 억울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수술 전에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고 채혈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용현(55·전남 목포)씨는 술을 마시지 않고 운전을 했는데도 경찰이 단속지침을 지키지 않은 탓에 자신이 음주운전이라는 날벼락을 맞게됐다고 호소했다.

지난 3월 5일 전남 함평에서 교통사고가 난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서부분소가 내놓은 감정 결과는 혈중알콜 농도 0.294%. 일반적으로 소주 3병을 마셔야 하고, 똑바로 걷기도 힘들며 의식이 명료치 않아 의사소통이 힘든 원할하지 않은 만취상태에 해당하는 수치다.

▲ 김용현(왼쪽)씨는 "경찰이 알코올 솜을 사용해 채혈한 이미 알코올로 오염된 혈액을 국과수에 건넸기 때문에 ,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만취상태 수치가 나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이승후
한 방울도 안마셨는데 0.294%?

그러나 김씨는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검찰의 음주운전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김씨는 "수사기관과 사람들에게 결백을 주장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술을 마셨으니까 국과수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지라는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지난 4월 검찰로 부터 음주운전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 400여만원, 면허취소 통보를 받았다. 여기에 보험사가 지급했던 보험금도 반납해야 했고, 상대 차량 보상금까지 금전적인 부담을 안게 됐다.

김씨 가족들은 백방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청와대 민원실, 경찰청 등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매번 똑같은 대답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교통사고 이후 최초로 출동한 119대원과 경찰 관계자들이 '음주를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이 없는 상태였지만 '혈액 감정결과 혈중알코올 농도 0.294%'가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막막하기만 했던 김씨 가족들은 '채혈 과정과 보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김씨는 병원에서 (음주측정을 위한 것이 아닌) 검사용으로 채혈하면서 에틸알코올 성분이 있는 소독제(솜)을 사용했고, 경찰은 이 혈액을 그대로 건네받아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에틸알코올은 술에 포함된 알코올과 똑같은 성분으로, 혈액을 오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을 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소재 한 병원 관계자는 "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하면 오염가능성이 있어서 무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은 "수술실에 들어가 전신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관이 왔지만, 호흡측정기와 채혈 용구를 소지하지 않고 왔다"면서 "경찰이 장비를 챙기려 간 사이 전신마취를 하게 됐는데 이는 경찰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 "불순물 혼입가능성 배제 못해... 혐의인정 부족"

▲ 김씨가 내원해 수술을 받은 병원이 제출한 사실조회 통지문. 병원측은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시에는 에틸알코올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며 김씨의 채혈의 경우 오염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자료 사진
법원은 이같은 점을 인정해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판사 반정모)은 "혈액채취 과정이나 보관과정에서 불순물이 혼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국과수 감정결과 및 감정인의 진술만으로 음주운전을 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물론 법원은 ▲사고 당일 김씨와 함께 일했던 이아무개, 안아무개씨 등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진술 한 점 ▲목포전남병원 소견서·사실조회서에서 김씨가 '의식이 명료했고 비정상적인 행동은 없었고 의사소통 상태로 보아 만취 상태로 사료되지 않았다'고 한 점 ▲만취상태에서는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의사 소견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정모 판사는 19일 전화통화에서 "혐의를 인증할 수 있는 것은 (국과수)감정서 하나였다"면서 "나머지 정황도 만취상태는 아니라는 것이고, 채혈과정은 중요한 것인데 경찰은 병원에서 검사를 위해 채혈 해 둔 것을 가져다가 의뢰한 것이어서 의문점이 있다는 것"이라고 판결 배경을 밝혔다.

국과수 서부분소 감정인이 법정에서 "이론적으로는 오염 가능성이 있지만 본 건과는 상관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지만, 채혈 당시 에틸알코올로 인해 김씨의 혈액이 오염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판결이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음주운전 혐의의 근거로 제출된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함평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한관계자는 "최초 출동한 119대원, 지구대 경찰관이 술을 마신 정황이 있다는 진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딱부러진 국과수 근거가 있는데 할 말이 없다"면서 "관례에 따라서 처리한 수치를 부정할 수 있느냐"고 했다.

20일 광주지검 목포지원은 1심 선고에 대해 항소해 법정 공방은 계속 이어지게 됐다.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김씨는 "정말로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하루 전이라도 술을 마셨다면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변호사 수임료에, 보험사에서 반납을 요구하는 돈도 있고 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찰, 내부 단속지침 지키지 않아... 지침 있는지 조차 몰라
경찰청 "알코올 솜 쓰면 영향 미치는 것은 상식"

김씨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채혈에 관여한 경찰관은 결과적으로 경찰청 내부 단속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알코올 성분이 있는 소독제를 사용해 채혈할 경우 오염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경찰청은 내부 단속지침을 마련해 뒀다.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일선 경찰서에 한하면 경찰청 내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일선 담당 경찰들은 '에틸알코올 성분'으로 인한 오염 가능성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내부 단속지침 여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이 지침은 경찰청 내부 사이트에 지난 2003년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음주측정을 위한 채혈시에는 반드시 무알코올 소독제로 소독해야 한다'고 지침을 공지했지만 일선 경찰들은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 한 경찰서 관계자는 "그런 지침은 없는 것으로 안다, 세트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플라스틱 용기만 가져가서 병원에서 채혈한 혈액을 담아올 뿐"이라고 말했다. 함평경찰서 한 관계자는 "그런 지침이 있는지 모르고 그런 교육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한 방울도 마시지않았는데 만취상태 수치가 나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통단속처리지침과 교통사고처리지침에는 지급된 채혈 세트(무알코올 소독제, 주사기, 보관용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내부 지침있고, 이를 일선서에 공지했다는 것이 경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찰청 교통사고분석계 단속반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음주측정을 위해서는 무알코올 소독제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내부지침에도 그런 내용이 있고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알코올 솜을 사용했다면 당연히 (혈중알코올 농도 감정결과에)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편 현재까지 에틸알코올 성분이 있는 소독제를 사용해 채혈할 경우 혈중알코올 농도 측정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이론적으로는 있다'는 데 이론은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만취상태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보고 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강성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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