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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눈에다 짱구 이마, 그리고 돌출된 치아하며, 제 얼굴 어디 하나 곱다 싶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웃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딸이랑 함께 했습니다.)
짝눈에다 짱구 이마, 그리고 돌출된 치아하며, 제 얼굴 어디 하나 곱다 싶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웃는 얼굴을 좋아합니다. (딸이랑 함께 했습니다.) ⓒ 이승숙
"당신, 이마 또 가렸네. 이마 드러내라니까 왜 가렸어?"
"이렇게 말야? 이러면 이마가 튀어나와서 보기 싫잖아."
내가 앞머리를 걷어 올리며 이리 말하자
"보기 싫기는? 좋기만 한대. 당신은 이마를 드러내야 돼. 이마 드러내야 일이 잘 풀려."
하고 남편이 말했다.

남편이 요즘 부쩍 민감해진 거 같다. 전에는 아무렇게나 지나가던 일들도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슬쩍슬쩍 농담도 잘하고 칭찬의 말도 잘 해주던 사람이 요 며칠 사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며칠 전에 미용실 가서 머리 좀 정리하고 왔더니 금방 알아보고 또 그런다.

"당신 또 머리 잘랐어? 머리 한창 길이 나서 예쁘던데 왜 잘랐어? 이마를 가리면 어떡해. 이마를 드러내라니까 왜 자꾸 가려?"

돈 주고 일껏 머리 정리하고 왔더니 예쁘다는 말은 없고 핀잔만 준다.

"이 머리가 어때서 그래? 난 예쁘기만 하구만."
"당신은 꼭 그러더라. 길 나서 예쁠만 하면 잘라 버리더라. 그냥 그대로 있어도 되는데…."

소녀 시절에 나는 내 이마가 보기 싫었다. 유난히도 톡 튀어나온 내 이마가 부끄러워서 앞머리로 가리곤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앞머리를 살짝 내려서 가려주곤 했다. 선생님들에게 지적 받으면서도 몰래몰래 그리 하곤 했다. 실 핀으로 앞머리를 고정시켜서 나름대로 이마를 가려 주었다.

내가 내 이마에 열등감이 있다는 걸 안 엄마는 그러셨다.

"니 이마가 어때서 그리 가리노? 니 이마는 복이마다. 한번 봐라. 시원스레 툭 튀어나온 게 복이 많이 들어있게 생깄잖나. 니는 이마를 드러내야 된다. 이마를 드러내야 일이 술술 잘 풀릴끼다. 그러이까네(그러니까) 함부레(아예) 이마 가리고 그러지 마라."
"엄마, 정말로 그러나? 내 이마가 복이마가?"
"그라마. 니 이마는 복이마다. 저 우에 숲실 할매 알제? 숲실 할매가 니맨치로(너처럼) 이마가 그리 튀어나온기라. 그런데 그 할매 아들들이 얼매나 잘 됐는지 아나? 그 할매 보마 얼굴이 늘 웃는 상이고 이마가 그리 시원스레 나왔더라. 그 이마로 복이 다 들어오는기라. 그러이까네 니는 함부레 이마 가리지 마라. 이마 다 드러내놔야 일이 잘 풀리고 그런다. 알았제?"

엄마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내 이마에 조금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애교머리로 이마를 살짝 가리곤 했다.

엄마 말이 진짜일까? 이상하게 이마를 환히 다 드러내놓고 살면 세상만사가 다 무난하게 잘 돌아가는 것 같다. 근심 걱정도 없고 무탈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의기소침하고 의욕이 없이 지낼 때는 머리 역시 신경을 안 써서 그런지 축 늘어지고 이마를 가리고 그랬던 거 같다.

이마를 드러내서 일이 잘 풀린 게 아니라 생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니까 머리에도 신경을 써서 예쁘게 하고 다녔던 것인데 나는 나중에 의욕이 없을 때면 이마를 가렸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수능시험일을 한 달 앞둔 요즘, 말은 안 하지만 남편은 많이 신경이 쓰이는지 알게 모르게 날카롭다. 내가 불안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서 풀어버리는 반면 남편은 속으로 삭히는 것 같다.

"여보, 이마 드러내. 장모님이 당신한테 그러셨다며 당신 이마가 복이마라고. 이마를 드러내야 일이 잘 풀린다고 그러셨다며? 이마 가리지 말고 다 드러내."

남편이 말은 안 했지만 나는 그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수능시험을 치를 딸을 위해서 그리 말한다는 걸 나는 알 거 같았다. 톡 튀어나온 내 이마로 복이 들어와서 그 복이 딸에게로 가기를 남편은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우리 엄마는 딸한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내 이마가 '복이마'라고 그러셨다. 나는 엄마 말을 듣고 열등감을 버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모든 것은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튀어나온 이마를 부끄러워했을 때는 남 앞에 설 때 내 이마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내 이마가 복이마라고 믿게 되면서부터 나는 누구 앞에 가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딸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

"봐라, 엄마 이마는 복이마다. 엄마 복이 니한테로 갈끼다. 그러이 마음 턱 놓고 시험 치라"고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딸이 엄마의 말을 믿고 자신있게 시험을 잘 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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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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