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쯤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독서하는 소녀'. 지금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애써 남아 있다. 이승복 어린이 동상과 함께 '독서하는 소녀'가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것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때.
"엄마, 저애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언제나 책만 읽으면 1년에 몇 권을 읽을 수 있을까요?"
소녀 앞을 함께 지나던 딸아이가 묻는다. 글쎄? 모르겠네? 아이의 아이 같은 질문에 딱히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동화책의 갈증이 컸던 어린 시절 생각을 하며 딸아이는 나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열정적인 책읽기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아이는 올 봄부터 '책을 많이 읽는 것'을 목표 삼아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그 다독을 뒷받침 해줄 독서록 작성에 열심이다. 그리고는 봄이 가기 전 어느 날 '동장'을 가져다주더니 '은장', '금장'을 몇 달 간격으로 받아와 어깨를 으쓱였었다. 머잖아 학교를 상징하는 이름이 들어간 '개나리장', '소나무장', '세솔장'을 타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책을 많이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해!"
'독서하는 소녀'와 '초등학교 4학년 그 해 여름'을 추억하다
비나 눈이 올 때도, 우리들이 학교를 비운 방학 때도 반공소년 이승복과 함께 교정을 지키던 소녀는 언제나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녀는 가장 잘 보이는 조회대 옆에 있어서 조회를 할 때는 물론 등하교 때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 때도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나도 저애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언제나 책을 읽고 있는 소녀처럼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독서하는 소녀'를 교정에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어도 책이 없는 가난한 시골 아이여서 늘 낯선, 먼 나라 아이였다.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4학년 때까지 내 몫으로 가진 동화책이 한권도 없었다. 그래서 소녀가 읽고 있을 동화책은 부잣집 아이나 누릴 수 있는 부러움 일뿐.
동화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학교 도서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꽤나 큰 그 학교에는 제법 갖추어진 큰 도서관이 있었다. 하지만 활짝 열려있는 날보다 닫혀있는 날이 더 많았다.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도서관 앞에서 자주 서성거렸다.
지금의 아이들이라면 도서관 문이 왜 닫혀있어야만 하는지를 선생님께 따져 물었겠지만 그때 우리들은 왜 그렇게 순진했던지!
그래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렵게 빌려 읽은 책은 고작 5,6권쯤? 설렘으로 책을 빌리러 갔다가 반납하려고 가져갔던 책을 다시 가지고 풀죽어 돌아온 기억이 더 많다. 언니나 동생들도 책을 빌려 온 기억이 거의 없고 보면 아쉽고 씁쓸한 기억속의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는 가난한 시골아이. 늘 닫혀 있던 도서관. 이런 내 아픔에도 아랑곳없이 언제나 책을 읽고 있던 소녀. 그래서 어린 마음에 소녀가 더 멀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가는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낯선 소녀였다.
'나도 저애처럼 실컷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난 언니 오빠의 교과서를 주로 많이 읽었었다. 언니의 교과서에는 내 책보다 차원 높은 재미있는 동화들이 실려 있었기에. 이런 나에게 어느 날 많은 책이 생겼다.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몇 번이고 내 맘대로 실컷 읽을 수 있는 소년소녀 명작동화 50권!
세살 터울 억척빼기 언니의 '책 욕심'으로 책사랑은 싹 트고...
"언니! 왜 있잖아! 내가 4학년 때 언니가 '봉골'에서 누에 쳐 주고 받은 돈으로 책 50권을 사왔잖아.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 명작문고였던가? 오돌 도돌 도드라지는 금박글씨도 있던 그 책들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언니도 참 대단해. 14살짜리 언니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책이 그렇게 좋았어? 누구 말마따나 죽을 만큼 좋았나보네?"
"내가 책이 죽을 만큼 좋아서 그랬겠니?(웃음) 내 친구 OO네가 참 잘 살았거든. 그래서 책이 좀 많았는데 날마다 학교에 가져 와서 약 올리기만 하고 빌려주질 않는 거야. 그때 우리 집에는 동화책 한권 없었잖아. 우리만 그랬니? 대부분 그랬잖아. 그래서 얼마나 샘이 나던지 봄 내내 학교 갔다 와서 '봉골'로 달려가 누에를 쳤지. 그때 받은 그 많은 돈을 모두 그 책 사는데 썼지만 한 번도 후회해 본적 없어. 전주에 나가 책을 사가지고 양쪽에 들고 오면서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 같았고 마음이 붕! 떠서 저녁밥도 못 먹겠더라고. 그리고 한동안 그 책들이 자랑스러워 자주 쓰다듬어 보곤 했었다…."
동네에서 억척빼기로 소문난 세 살 터울 언니의 책 욕심이 이랬다. 그랬다. 그 책들은 언니의 오기로 사온, 물론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가능할 수 없는 언니의 책 욕심이고 오기였다. 언니도 나도, 동생들도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실컷 읽자고 사온 것이다.
그 책을 가장 많이, 가장 열심히 읽은 것은 나였다. 동화책에 대해 갈망이 컸던 나에게 어느 날 한꺼번에 쏟아진 그 많은 책들은 횡재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산속 원두막으로 가서 하루에 몇 권씩 책만 읽고 읽었다.
한손에는 도시락을, 한손에는 책 몇 권이 든 가방을 들고 날마다 원두막으로 갔다. 이른 새벽에 갈 때도 있어서 풀잎에 맺힌 이슬에 종아리가 젖었고, 해떨어진 밤에 오기 일쑤여서 길가에 잠을 자고 있던 개구리들이 튈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추억이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날마다 산속 원두막으로 기어들던 소녀. 그것도 모자라 캄캄해 질 때까지? 하지만 집으로 놀러 오는 친구들을 피해 오직 책만 읽을 수 있는 원두막행이 그렇게 좋기만 했었다.
<암굴왕>의 주인공처럼 감옥에 갇혀도 좋으니 이삼년만 죽어라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거지왕자>에서 가짜 왕자와 진짜 왕자가 드디어 만나는 대관식 장면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보물섬> <빨강머리 앤> <삼총사> <장발장> <작은 아씨들> <돈키호테> <키다리 아저씨>… 그해 여름 이들과의 만남을 어찌 잊으랴.
그렇게 명작동화 50권을 모두 읽었고 재미있는 것은 두세 번씩, 몇 번을 더 읽은 책도 많았으니 그 여름에 아마 100권은 족히 읽지 않았을까? 절대 잊을 수 없는 4학년 여름방학의 행복한 책읽기다. 그때 책에 대한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소녀'는 내게 책읽기를 원치 않았지만...
책이 귀한 시절에 야속하게 학교의 도서관마저 닫아걸고 없는 책을 많이 읽으라던 교육. 동상 하나 세우는 것만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랐던 교육. 동상을 세우는 것보다 도서관 문을 활짝 열어 아이들이 책을 맘껏 만날 수 있게 하였다면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숨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억척빼기였던 언니의 책사랑 덕분에 다행이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고, 이 나이까지 책을 놓지 않고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언니의 책 욕심 덕분에. 그래서 언니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다.
오늘은 딸아이의 생일. 오랫동안 아이가 손때를 묻혀가며 읽을 책을 한권 사주고 싶다. 내가 그래 온 것처럼, 아이도 나처럼 자신만의 기념일에 책 한권씩 사서 읽고 특별한 느낌을 적어 두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입니다.
※이 글은 10월 25일에 썼으며, 기사 중에 나오는 '봉골'은 제 고향 마을 외딴집을 부르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