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생일 선물의 실적(?)은 줄곧 좋았다. 최신형 알루미늄 야구 배트부터, XT 컴퓨터까지…. 부모님은 생일 때마다 내가 갖고 싶었던 선물을 해주셨다.
5학년이 되던 해에는 집안 사정이 좀 어려워졌다. 하지만 난 철이 무척이나 없었던지라, 어려운 상황에도 정말 갖고 싶었던 휴대형 카세트(보통 워크맨이라고 했다)를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졸라댔다.
당시 20만원을 호가하던 선물을 쉽게 사주기 힘드셨던 부모님께서는 생일이 임박했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셨다. 결국 생일날이 되었고, 그날은 그저 밥상 위의 미역국이 전부였다.
“엄마, 뭐 없어?”
“워크맨은 다음에 꼭 사주께. 미안하다.”
어머니께서는 좋은 말로 타이르셨지만, 난 결국 허탈감과 배신감(?)에 방과 후 집에 돌아가지 않는 가출을 감행했다. 가출이라 해봐야, 일단 학원을 자체 결강하고, 친구들과 저녁까지 야구를 하며 이후에는 오락실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당시 오후 5시면 집에 오던 아들이 밤이 늦도록 전화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께서는 심히 걱정을 하셨나 보다.
나의 첫 가출은 9시 뉴스가 시작될 무렵 끝났다. 더 이상은 갈 곳이 없어 집에 도착하니 자그마한 생일 케이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화를 낼만도 하신 어머니께서는 따뜻하게 한 마디를 건네셨다.
“추운데 일찍 들어오지 그랬니. 생일 축하한다 아들아”
대학생이 되고, 생일만 되면 ‘맨날 술이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느 정도는 철이 들었는지 부모님께 선물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친구들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나의 생일 선물에 대한 집착은 청소년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권유 및 협박 등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선물을 받아냈다. 고3때는 무려 50여 개나 되는 생일선물 받기도 했다. 그간 인간성 관리를 잘해서 받은 거라 생각하고 싶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하며 지냈으니 생일엔 오죽했으랴. 정말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것도 고향 친구, 같은 과 친구, 동아리 친구, 통신 친구까지 생일 전후로 최소 네 번은 인사불성이 되었다.
12살 때는 부모님에 대한 항의로 가출을 했다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는 술 먹고 노느라 생일 때면 항상 그 다음날 아침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가출이다. 그렇게 가족은 잊은 채, 친구들과 생일을 보내고 집에 들어와도 꼭 자그마한 케이크와 미역국은 식탁 위에 항상 놓여 있었다.
작년 생일도 친구들과 거하게 한잔을 하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비몽사몽으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위해 속풀이 해장국을 끓여 주셨다. 국을 준비하시는 동안 어머니의 핸드폰에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서는 마루에서 뒹굴고 있는 나에게 문자 좀 확인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새로운 문자를 확인해드리는 과정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 바로 전에 어머니께 온 문자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자로 인해 난 지난 20여 년간 뭔가를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보 24년 전 오늘. 힘들게 우리 큰아들 낳아줘서 고마워요, 이따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이제 미역국을 제가 끓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생일이라 믿고 있던 그 날은 내 생일이 아니었다. 그 날은 어머니께서 나를 열 달 동안 한몸처럼 데리고 다니시다가 참기 힘들어 비명조차 지르기 힘들다는 그 고통들 참아내시며 나를 낳으신 날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된 날이기도 하다.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은 생일 선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친구들과 질펀하게 술을 마시며 생일을 보냈지만 이제 나의 생일 10월 23일에는 꼭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 된 이 날을 축하드려야지.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신 어머니께서는 수험생인 동생을 위해 매일 6시에 일어나셔서 아침 준비를 하신다. 내 생일날, 나는 5시에 일어나서 어머니 몰래 미역국을 준비해 볼까 한다.
재료는 다 사놨다.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요리해서 아침에 어머니께 미역국을 한 그릇 차려드리고 싶다. 당신이 25년간 그렇게 하셨듯이….
“어머니, 25년 전 저를 힘들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미역국을 끓여 드릴게요. 절 낳으시고 미역국을 드셨을 때의 그 느낌 기억 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