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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매특허'인 단풍깻잎김치, 노란 깻잎이 가을을 제대로 느끼도록 만든다.
어머니의 '전매특허'인 단풍깻잎김치, 노란 깻잎이 가을을 제대로 느끼도록 만든다. ⓒ 노태영
세월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든다. 사람도 변하게 만들고 강산도 변하게 만든다. 물론 인간관계도 변하게 만들고 우리들의 관심거리도 변하게 만든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월은, 하지만 우리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 곁에 있어도 우리가 마음을 주지 않았거나 애써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세월을.

그래도 세월은 자신의 길을 가면서 우리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을 동행으로 삼는다. 물론 세월은 우리들의 생활이나 행동관습도 함께 동반자로 삼는다. 결국 세월 때문에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월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외톨이가 아니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우리는 세월의 절친한 친구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 바로 어머니 사랑이다. 어머니 사랑은 예전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또 새로운 사랑이 한 겹 두 겹 보태어진다. 그래서 그 두께를 헤아릴 길도 없고 헤아릴 잣대도 없다. 단지 마음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 또 흘러 내가 어머니의 세월만큼 살고 난 다음에야 어머니 사랑의 두께를 어렴풋이 짐작을 할 따름이다. 그래서 부모가 되어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말을 하는가 보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사랑은 생리적 욕구와 관련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그리고 일상적인 삶과 관련이 있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은 꼭 우리 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집은 4남 3녀다. 지금은 만날 때마다 시끌벅적해서 좋지만 예전에는 아마 그 반대였을 것이다. 매일 매일이 부모님에게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자식 두 명도 버거워 집에서 이 야단인데 자식이 일곱 명이나 되는 대가족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그래도 부모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던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 인내와 수련의 생활 속에서 달구어진 마음 때문이리라.

지금도 부모님의 자식사랑은 유별나다. 명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집에 가면 무엇이든지 한 보따리씩 들고 집에 오게 된다. 시골에서 팔순이 다 되신 부모님이 손수 지으신 무공해 채소는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반찬들을 독점공급하고 계신다고 할 수 있다. 철마다 나오는 과일과 해마다 주시는 햅쌀 한 가마니는 우리의 귀중한 생명줄이다. 시골에 다녀올 때마다 부모님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생활이 너무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단풍 깻잎김치를 담기 위해 하루 종일 이쁘고 때깔 좋은 들깻잎만 골라 따서 자식들에게 한 통씩 안겨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에 눈물 젖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수천 장 아니 수만 장의 깻잎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 많은 깻잎을 씻고 또 씻고 한 장 한 장에 양념을 넣고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까지 넣어 만든 단풍깻잎김치를 먹을 때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꼭 있다.

"서영아! 할머님이 힘들여 만드신 음식인데 아껴 먹어야지."
"현진아! 양념까지 다 먹어야지 걷어내면 어떻게 해."

허리쉼도 아까워 줄곧 일손을 놓지 않고 쪼그려 앉아 들깻잎에 양념을 하시는 당신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향의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자연을 온 몸으로 흠뻑 머금고 오는 것도 좋은데 덤으로 부모님 사랑까지 얻으니 어떻게 말로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고들빼기 김치, 단풍깻잎김치, 고추볶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고들빼기 김치, 단풍깻잎김치, 고추볶음 ⓒ 노태영
지난 주말에는 고구마 순 김치와 무김치를 가져왔다. 적당하게 익은 고구마순 김치와 막 담으신 무김치는 말 그대로 고향의 맛이다. 지난 겨울에 온 가족이 모여서 담근 김장김치 한 통이 남았다고 말씀하는 어머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묵은 배추김치 한 통도 얻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그득한 고향의 음식들이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은 물론 생활까지도 풍족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마음에 드는 반찬은 바로 고추볶음이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즐겨먹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추볶음이다. 고추볶음은 시골에서 가장 흔한 음식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북 진안 마령과 같은 고추가 많이 생산되는 시골에서는 고추는 중요한 먹을거리 중의 하나다. 5월 말 경에 고추모를 옮겨 심을 때 작은 고추모 잔챙이들만 모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적당하게 양념을 넣어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밥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어렸을 때 이 고추순 나물로 밥을 비벼 먹으면 진짜 맛이 좋았다. 지금도 아내에게 부탁하여 고추순 나물을 먹어보지만 어머님의 손끝에서 나오는 맛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한 여름에는 찬물에 밥을 말아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먹는 맛이 그만이다. 약간 매운맛이 든 고추를 먹다 보면 재채기도 나오고 콧물도 나오지만 싱싱한 풋고추의 맛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시뻘건 고추를 고추장에 푹 찍어 콧등에 땀을 흘려가면서 막걸리를 드시는 모습이 보기 어렵지 않았다.

빨간 고추가 고추밭을 빨갛게 물들일 때면 시골마을은 온통 축제분위기가 된다. 고추 값이 괜찮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고추잠자리가 파란하늘을 수놓을 때 동네 길가나 빈터에는 빨간 고추를 말리느라 온 동네가 빨갛게 변한다.

이때부터 고추전과 고추볶음 반찬이 제 맛이 나기 시작한다. 고추전은 막걸리 안주나 밥반찬으로는 으뜸이다. 매운 맛이 고여 있는 고추전을 먹으면서 흘리는 눈물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눈물일 것이다.

고추볶음은 서리 내리기 전 연한 풋고추를 따서 만든다. 그래야 적당히 맵고 육질이 씹히는 느낌이 부드러워 참 좋다. 바로 지금이 제일 맛이 좋을 때다. 고추볶음은 가을 밑반찬으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고추볶음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진안 마령 특산품인 고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갈 때 우리의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진안 마령 특산품인 고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갈 때 우리의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 노태영
어머님은 고추볶음을 할 때 고추를 많이 넣으시고 멸치는 조금만 넣으셨다. 그래서 자식간에는 멸치를 찾느라 일대 눈치작전이 벌어진다. 멸치는 비싸고 구하기 어렵고, 고추는 고추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당연하셨으리라. 그래서 멸치는 금세 동이 나고 고추만 남는데 매운 고추만 먹다 보면 코끝이 얼얼할 때도 있다.

그때 당시에는 멸치를 더 넣고 싶으셨겠지만 비싼 멸치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접으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온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멸치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고추는 예전과 비교하면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옛날을 생각하시는지 요즈음도 어머니의 고추볶음 속에는 거의 멸치반 고추반이다.

요즈음 대개 멸치보다는 고추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반찬 그릇에 남는 것은 멸치밖에 없다. 고추만 골라서 먹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참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마리의 멸치를 놓고 눈치싸움을 하던 옛날과 멸치만 처량하게 남아 있는 식탁을 보면서 말이다. 그래서 고추를 많이 넣고 멸치는 조금만 넣으시면 더 맛이 있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어머님의 고추볶음은 늘 고추볶음이 아니라 멸치볶음이 된다.

바로 세월에 따라 이렇게 우리의 입맛도 변하고 음식도 변하는데 어머니 사랑만큼은 예전의 사랑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때 부족했던 멸치를 생각해 듬뿍 듬뿍 멸치를 고추볶음에 넣으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지난 주말에 해주신 고추볶음을 다 먹기도 전에 또 한 통의 고추볶음을 싸 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이 너무 좋아서 멸치도 남김없이 다 먹어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다음 주에도 시골집 부모님을 방문하는 행복한 꿈을 꾼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익산 남성고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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