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5일)로 한미FTA 4차 협상이 사흘째를 맞았다. 아울러 반대 목소리를 외치는 농민들과 각계 각층의 시위는 나흘째를 맞이했다.
협상 첫날인 지난 23일, 전국에서 1만여명이 FTA반대 집회에 참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방송과 주요 언론들은 '단비' 소식과 경기도 지방에 짧게 내린 첫눈 소식, 강원도 지방의 홍수 등을 중점 보도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그리고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한미FTA 협상 소식은 방송과 주요 언론에서 메인 뉴스가 되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협상 벌어지니 감귤로 무마?
한미FTA 협상이 벌어지는 제주도에 모인 농민들도 제주를 떠나기 시작했다. 먹고 자는 것에 엄청난 비용이 들고 가을걷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평일이라는 점도 시위를 오래 지속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다.
협상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선택한 곳이 제주도였으리라. 그리고 제주도 농민들의 반대를 무마하려고 자유무역협상에서 감귤을 제외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게 바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쌀은 과거에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인구가 약 55만 명 정도인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의 수는 3만6천여명이다. 그 가운데 3만1천여명이 감귤농사를 짓고 있다. 사실 제주 산골 농민에게 감귤은 황소 한 마리와 같은 존재다.
정부가 농촌 위해 한 일? 노인정 만든 것
24일, 육지에서 온 대다수의 농민들이 떠나갔다. 참가하는 농민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협상을 저지하겠다는 의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의지는 더 높았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민을 위해 한 것 중 잘한 일은 노인정을 만든 것 뿐"이라고 외쳤다. 농촌은 노인들만 사는 곳,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는 곳이 된 것이다.
뜨거운 결의를 다지는 자리에서 한상렬 목사(통일연대 상임대표)는 "노무현, 그대는 가장 후회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며 "당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면서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바다 건너고 산 넘어도...
시위대는 협상이 열리고 있는 신라호텔을 향해 시가행진을 했다. 하지만 경찰은 호텔로 가는 길목인 천제교를 3중으로 쌓은 컨테이너 상자와 모래를 가득 실은 트럭으로 막았다.
농민들은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 것에 대비한 경찰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동원하여 호텔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 10여명이 다치기도 했다.
농민들이 컨테이너 상자를 밧줄로 끌어내자, 경찰은 화재진압용인 소방차를 동원하여 농민들을 향해 물을 뿌리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농민들이 넘어야 할 벽은 너무나 높았다.
농민들은 자연과 싸우고 사람들과 싸운다
홍수와 비바람을 견디며 농사를 지어야 하고, 그런 농산물도 온갖 벌레와 병해충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수확을 하면 소비자는 외면한다. 가격이 비싸고, 농약을 뿌렸다고.
농민들은 자연과 싸우고, 사람들과 싸운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의 정책과 싸우고 있다. 농민은 농사만 짓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정치인은 정치만 하고, 군인은 국가만 지키는데, 왜 농민은 농사만 짓고 살지 못하는 것일까?
제주의 아픔을 뒤로 하고 떠나야 했다. 제주도로 가는 배에는 경찰들만 가득했는데, 제주를 떠나는 배에는 농민들만 가득했다. 밤배를 타고 떠나는 농민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히는 데는 소주 몇 잔으로 모자랐다.
시위 현장에서 마신 술이 아직 깨지도 않았건만, 농민들은 배에서 또 술을 마셨다. 어둠 속을 지나는 배가 농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엔 상처가 아물며 생긴 것 같은 별이 점처럼 박혀있고, 제주는 별이 되어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