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강행 및 이에 대한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으로 고조되었던 한반도 위기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우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탕자쉬안 중국 특사에게 "미국이 유연성을 보일 경우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우려되었던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 역시 전면적인 대북 제재 및 봉쇄 노선 구축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강도높은 대북 제재에 난감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에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미군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다시 이라크로 모아지고 있다.
한국은 핵실험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포용정책 포기를 시사하면서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으나, 현재 대북포용정책은 '포기'가 아닌 '수위 조절'로 가닥을 잡고 있다. 개성공단 및 금강산 사업을 중단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태풍의 눈'이 휘감고 있는 한반도
그러나 최근 상대적인 평온함은 태풍이 지나가서가 아니라 한반도가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즉, 태풍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비바람을 몰고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의 중재외교나 북한의 다소 유연해진 태도를 폄하하면서 '대북 제재 강행 및 북미 직접대화 거부'라는 기존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역시 6자회담 복귀에 '대북 금융제재 해제'라는 꼬리표를 계속 붙이고 있어 파국을 타개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는 11월 중순까지 대북 제재에 대한 각국의 입장과 정책을 취합해 본격적인 대북 제재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만일 유엔 안보리가 구체적인 대북 제재 및 봉쇄 방안을 내놓고 이에 반발해 북한이 2차 핵실험 등 추가적인 조치에 나선다면,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북핵 문제가 악화될수록 한국의 입지는 위축된다. 1차 핵실험 직후 한반도 문제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엔 안보리 중심으로 논의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된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의 손에서 떠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도 한다.
한국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노무현 정부의 힘과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북한의 결단을 이끌어낼 정도로 남북관계가 건실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특단의 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까지의 북핵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고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북핵 전담대사'의 임명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1998~99년에 미국 의회가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 전반을 재구성하게 한 것을 벤치마킹해보자는 것이다.
왜 필요한가
현 시점에서 한국이 비중있는 인사를 '북핵 전담대사'로 임명해 북핵 문제 해결 방안 마련에 전념케 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선 국내외에 한국의 북핵 문제 해결 의지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북핵 외교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북핵 전담대사 신설은 미국에게도 의미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9월 30일 미 상원을 통과한 국방수권법은 대북정책조정관의 임명을 포함하고 있는데, 11월 7일로 예정된 중간선거가 끝나면, 어떠한 형태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자신의 대북정책에 칼질을 가할 수 있는 대북정책조정관이 껄끄러워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 미국 의회와 여론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 한국에서 북핵 전담대사를 신설하면 미국에게도 자극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이 임명되면 새로운 차원의 한미공조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북핵 전담대사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속성을 갖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정책결정자'가 아니라 '정책권고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존 정부 정책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대미 외교 등 국제외교 무대에 있어서도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견 수렴과 교환이 가능한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이러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북핵 전담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6자회담 참가국들을 대상으로 한 '메신저 및 갈등 중재자' 역할이다. 99년 윌리엄 페리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때, 한·중·일은 물론이고 북한도 방문해 폭넓은 의견 수렴을 했던 것처럼, 북핵 전담대사도 주변 4강 순방과 방북을 통해 관련국 사이의 간접적인 대화 채널과 갈등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99년 페리보고서와 같은 '북핵 해결 권고안'의 작성이다. 이를 위해 각국의 기존 정책과 입장을 재검토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6자회담 참가국 순방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정책 권고안은 상당한 권위를 확보할 수 있게 돼, 북핵 해결의 로드맵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적임자인가
그렇다면 누가 이와 같은 막중하고도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일까? 필자의 사견으로는 군 출신으로 국방문제, 특히 군비통제에 정통하면서도 통일외교안보 요직을 두루 거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적임자인 듯 하다.
특히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페리와의 긴밀한 의견 교환을 통해 페리보고서를 탄생시킨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고, 2002년 4월에는 방북을 통해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력은 현실적으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 등 국내 보수세력이 이에 반발할 것일 뿐만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해온 부시 행정부가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합리적인 보수 인사를 임동원씨와 함께 공동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라크 정책을 재검토하기 위해 공화당 추천 인사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민주당 추천 인사인 리 해밀턴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이라크 조사 그룹(Iraq Survey Group) 운영과 흡사한 방식이다.
합리적 보수 인사로는 한승주 전 외무장관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차 북핵 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의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비교적 원만하게 북핵 문제에 대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김대중 정부 때에는 주미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합리적 진보인 임동원과 합리적 보수인 한승주가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북핵 문제 해결 방안 모색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면, 이는 여야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지혜'를 모아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접근법은 남남갈등의 '핵'이었던 북핵 문제를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지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