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민(가명·53·전남 담양군 수북면)씨는 30년 이상을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 2월에 고향 땅으로 귀농한 사람이다. 부인을 동반하고 군 복무를 마친 아들과 함께 고향 땅을 찾은 후 정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11대째 내려오는 구옥을 헐고 새로운 집을 짓는 일이었다. 그런데 건축에 문외한인 정씨가 손수 집을 짓기에는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새집을 짓는다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인터넷 동호회에 모인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다"며 집짓는 일이 이렇게 고될 줄 몰랐다고 한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은 "다시는 집 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는'에 아주 강한 악센트를 주어 말했다. 유난히도 길고 더웠던 여름 나절에 젊지도 늙지도 않은 50대 부부가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멘트와 유해 건축자재를 쓰지 않기로 기본 방침을 세운 후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주재료인 황토벽돌(경남 고성산)을 구하고, 향과 그 무늬와 해충퇴치에 뛰어나다는 편백(전남 장성산)을 사서 부인과 아들, 셋이서 치목(원목을 깎아 건물의 구조재로 다듬는 일)을 했다. 이때 인터넷 동호회에서 많은 조언을 받아 일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와를 올려 한옥의 멋을 부리고 싶었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값싼 자재를 썼다고 하는 외부의 모습인데, 평소에 시멘트의 독성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바닥의 기초 이외에는 시멘트를 일절 쓰지 않은 건물의 외관이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마당에는 집 뒤의 텃밭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고추와 콩이 마당에 널려 있다. 힘은 들지만 참 재미있다는 부인의 표정에서 오랜 도시살이를 접고 고심 끝에 결행한 귀농의 보람을 엿볼 수 있었다.
외부의 모습과 달리 친환경적인 자연 소재로만 이루어진 것인데, 화학접착제가 일절 첨가되지 않은 황토벽돌로 내벽을 쌓고 편백으로 서까래와 천장의 개판을 올려 노출식으로 꾸몄다.
정씨는 "어설픈 솜씨로 깎은 서까래나 판재들이 남들한테 보여주기가 쑥스럽다"며 겸손해하는 말만큼이나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거실의 풍경이다.
고진감래라고나 할까? 집의 뒤편에 온통 대나무밭으로 둘러싸여 유독 모기의 극성이 심한 동네지만, 지난여름엔 소문만큼이나 실내의 편백나무가 해충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해주어 그나마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던 편백의 위력이 새삼스럽다. 거기에 더하여 나뭇결의 아름다움과 그 향이 좋아서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좀 비싼 것이 흠이긴 하지만….
이들 부부는 현재 4평짜리 황토 찜질방에서만 생활하는데, 나머지 공간은 집안의 대소가와 외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니 누구든 찾아오면 환영하겠노라는 말했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조상님의 숨결과 손때가 묻은 구옥의 자재를 이용하여 작은 원두막도 하나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진작 찾아와 뜯기 전의 구옥도 구경하고 이들과 함께 땀도 흘리면서 집짓는 즐거움도 맛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랜만에 인간다운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예로부터 집은 그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화려하지도 호사스럽지도 않은 그러나 소박하고 정겨우면서 건강한 자재로 지어진 집, 주인의 품성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마당 어귀에는 봉숭아가 그 씨앗을 터뜨리지 못하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손을 갖다대니 이내 '톡'하고 터지는데, 아마도 내년 늦여름엔 이 집이 봉숭아로 뒤덮여 있을 듯하다. 안주인의 열 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저 집의 색깔만큼이나 예쁘게 물들여져 있을지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SBS의 U포터에도 함께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