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은 난 몰라요'란 찬송가 구절이 있다.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로 이어진다. 불행이나 요행도 내 뜻대로 못한다고 하소연 한다. 작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미래는 주님의 손길에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영역'이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할까?
기업과 사업에 청사진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에도 설계가 필요하다. 돈과 관련해서는 재무지도(설계)를 잘 그려놓아야 행복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월 30만원씩 10년 저금하면 원금 3600만원 된다는 식의 단순 계산이어서는 안 된다. 중간에 결혼과 출산, 주택구입과 자녀교육비, 노후대책 등 돈 모으는 속도를 줄이는 변수들도 고려해야 한다. 소득공제·비과세·복리효과·청약자격 등 가속도에 보탬이 되는 요소들도 잘 적용해야 한다.
최소한 고등학교 수학실력과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진지함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장거리경주다. 아래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인생 재무지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지방 치과병원에서 일하는 김은서씨(28세, 가명)는 결혼을 몇 달 앞둔 예비신부다. 김씨는 재무상담을 받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적었다. "얼마 전 친구 홈피를 방문했다가 무진장하게 행복해 하는 친구를 보았다." 돈을 어떻게 쓰는 줄 알게 돼 기쁘다는 거였다. 그 기쁨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한다.
김씨에게 앞으로 닥칠 재무 이벤트들은 뭘까? 김씨가 상담을 받으며 거론한 것들은 결혼·자녀교육비·노후였다. 평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고, 저축여력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어디 그뿐인가? 출산, 주택 확장도 고려해야 하고, 김씨만의 특별한 항목도 있다. 바로 홀어머니를 모시는 것이다.
이 긴 재무여정에서 돈의 흐름이 막히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 과정에서 결혼 예정자인 남자친구(33세, 중장비기사)씨도 상담에 함께 참여했다.
[단기 결혼자금] 발행어음이 정기예금보다 유리하다
김씨는 MMF에 1천만원을 예치해 두고 있었다. 1년 내 결혼자금으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단기자금을 운용하기에 적합한 종금사 발행어음에 700만원을 2개월 단위로 예치해 두고, 나머지 300만원은 예비자금으로 CMA계좌에 두기로 했다.
발행어음은 은행 정기예금보다 이율이 1% 정도 높고, CMA 통장과 함께 이용하면 만기 때 통장으로 자동입금되어 편리하다. 만기까지 확정금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실세금리를 적용하는 MMF나 MMDA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 예금자 보호도 되기 때문에 단기 목돈운용에 좋다. 단, 최소금액(100만원)과 최소기간(1개월) 조건이 있다.
[적립식펀드] 전문가 아니라면 안정된 펀드로
김씨는 또한 월납 30만원짜리 적립식펀드도 2개 가입해 있었다. 은행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바랐는데, 은행창구에서 권하는 상품으로 가입한 것이었다. 마침 주식시세가 떨어지고 있어서 우려하고 있었다.
펀드상품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자산운용협회 사이트를 함께 보면서 가입한 상품을 분석해 보았다. 특별히 나쁘지 않은 상품이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오래 되었고 설정금액이 많고 수익률이 오래도록 안정된 펀드를 고르는 게 낫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펀드 가운데 하나는 CMA 계좌를 개설한 종금사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높은 펀드로 옮기기로 했다. 앞으로 그 계좌를 저수지통장으로 이용할 경우 인터넷뱅킹 수수료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또 장기저축을 위해 두 펀드의 불입액을 10만원씩 낮추기로 했다.
[대출] 적금과 대출을 함께 하는 오류 시정
또한 남자친구는 결혼자금으로 월납 60만원짜리 적금을 불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친 차를 사면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1천만원을 대출받았다.
상식으로 볼 때 무조건 손해보는 경우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쫓기고 재무지도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렇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자랑스럽지(?) 않아서인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김씨는 상담을 별도로 진행하자고 했다. 다행히 적금누적액과 CMA 잔고를 합쳐 대출금 1천만원을 상환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지출항목을 꼼꼼이 따져보았다. 지금까지는 저축 여력이 60만원이었다. 아니, 60만원만 저축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비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다.
그런데 재무상담을 받으면서 인생 재무지도를 생각하면서 저축목표를 높이기로 했다. 결혼자금으로 쓸 단기적금 월 80만원을 포함해 105만원으로 저축액이 늘었다. 먼저 목표를 명확히 하고 현실을 따져 본 성과다.
[주택자금] 청약부금 가입
경매로 소형 연립을 낙찰받아 현재 김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주택 명의는 남자친구로 해놓고, 담보대출에 대한 이자는 김씨가 부담하고 있다.
결혼하고도 현 주택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예정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 조금 크게 되면 좀 더 넓은 주택으로 옮겨야 한다. 아직 그 대책이 없다.
그래서 남자친구 명의로 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한 청약부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보통 청약저축 가입이 먼저지만, 남자친구 명의로 경매주택을 낙찰받은 게 있기 때문이다. 납입부금을 최소금액인 5만원으로 해도, 적어도 4년 이상이면 청약1순위 기준인 잔고 200만원은 채울 수 있다.
[양육·노후자금] 장기저축 가입해야
김씨는 비과세저축으로 500만원을 예치해 두고 있었다. 결혼 후 육아자금이라고 한다. 그 다음 교육비나 노후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이 전혀 없다.
물론 아직 결혼 전이고, 세상에는 그렇게 장기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그저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완벽하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이나마 장기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지금 액수가 적더라도 일찍 시작하는 게 나중에 닥쳐서 하는 것보다 이득이다. 특히 장기저축은 비과세혜택(10년 이상)이 있고, 복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찍 할수록 좋다.
김씨와 남자친구 모두 월 20만원씩 장기저축상품(UL)에 가입하기로 했다. 18개월 이상 납입하면, 일정기간 납입을 중단해도 보험이 유지되고 중간에 목돈이 필요할 때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중도인출도 가능하다. 보험을 깨지 않기 위해 약정이율에 0.5% 가산금리를 더한 약관대출을 받는 것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또 저축여력이 더 생기면 추가납입도 가능한 상품이다.
이제 시작... 재무지도에 가속도 붙기를
이제 시작이다. 생애 재무지도를 그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출구조를 꼼꼼이 따져본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완성된 셈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재무설계에서 정말 절실히 와닿는 말이다.
김씨 예비부부는 아직 재무지도가 엉성하다. 특히 모시고 살 어머니의 노후대책이 전혀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하거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결혼 후, 출산 후 등 앞으로 재무지형이 달라질 일들이 많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지도는 훨씬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출근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올림픽도로의 운행속도는 떨어지고 시간이 더 걸리는 것과는 반대로, 김씨 부부의 재무지도 개선속도는 시간이 지나고 돈을 다루는 힘이 생김에 따라 가속도가 붙을 것임을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뉴스메이커>에도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