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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에서 생활합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도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습이 시행되는 탓에 깜깜한 밤중에 교문을 나서게 됩니다.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대신 선생님께 '집에 갔다 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 잠이 부족한 아이들
ⓒ 이기원
밤 10시가 되어 야간자습이 끝나고도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그렇게 3년을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서 생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전 수업에 들어가 보면 졸린 눈 비벼가며 수업 받는 녀석들, 눈은 뜨고 있어도 생기가 없는 녀석들이 많습니다. 오전 수업을 하는 교사들은 그런 녀석들을 깨워가며 수업을 해야 합니다.

오늘도 2학년 2반 1교시 수업을 하는데 한 녀석이 졸고 있습니다. OO란 녀석입니다. 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자꾸 고개가 책상을 향해 내려갑니다. 설명하다 말고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니 옆에 앉은 짝이 팔꿈치로 쿡쿡 찌릅니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깬 녀석은 어색한 웃음을 보입니다.

"OO, 너 당첨된 거 알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너만 봐줄 수는 없지."

OO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축하한다'며 박수를 칩니다. 근현대사 수업과 관련이 있는 노래를 조는 아이들에게 과제로 주어 부르게 하는 겁니다.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통해 평소 숨겨진 자신의 끼를 발휘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벌로 부는 노래가 달가울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이 아이들의 졸음을 쫓는 데는 나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곡을 완벽하게 익혀 어깨마저 들썩이며 노래를 부를 때는 아이들의 환호성도 높아집니다. 하지만 적어가지고 온 가사를 곡에 맞추어 부르는 게 아니라 읽는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mp3에 연결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노래랄 것도 없이 웅얼대다 끝나는 녀석도 있습니다.

"불합격이야."
"잘할 때까지 시켜야 돼요."
"다시 해. 다시 해."

노래 부르는 녀석이 제대로 못할 경우 다른 녀석들이 아우성입니다. 골탕 먹는 친구를 보며 즐거워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서당 풍경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작품에서도 훈장님께 야단맞은 친구를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우성치는 녀석들의 모습이 그 그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만하면 됐다."

잘 부르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최선은 다한 걸 대부분 인정해줍니다. 전부터 알고 있던 노래도 아니고 일주일 사이에 지정된 곡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배워 불러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 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이던 녀석들은 입맛만 쩝쩝 다십니다.

"OO, 부를 노래 알려줄게."
"쉬운 걸로 해주세요."
"239쪽 펴봐."

거기에는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에 변규백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다음 주까지 배워서 부르라고 했습니다. OO는 풀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녀석의 풀죽은 표정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대학을 위해 공부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잠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녀석들의 잠을 깨워가며 수업을 해야 하는 게 고등학교의 풍경으로 굳어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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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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