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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7일 저수지전경1
2006년 10월 27일 저수지전경1 ⓒ 김환희
2006년 10월 27일 저수지전경2
2006년 10월 27일 저수지전경2 ⓒ 김환희
10월 27일 금요일, 2학년 마지막 체험학습의 날. 사실 지난밤 흐렸던 날씨 때문에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따스한 가을 햇살이 창가에 드리워져 아이들이 체험학습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체험학습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체험학습 며칠 전부터 고민을 많이 해 온 터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간직해 주고 싶은 것이 담임의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

2006년 10월 27일 농가의 가을1
2006년 10월 27일 농가의 가을1 ⓒ 김환희
2006년 10월 27일 농가의 가을2
2006년 10월 27일 농가의 가을2 ⓒ 김환희
그래서 처음에는 웬만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장소로 가고자 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의논을 하여 내린 곳이 내가 생각지도 않은 '용인 에버랜드'였다. 하지만 그곳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한 번쯤 다녀온 곳이고 당일 체험학습 장소로 적절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체험학습으로 인해 부모님의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없이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피력하기로 하였다.

"얘들아, 너희들의 뜻은 모르는 바가 아니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조금 힘이 들 것 같구나. 그리고 봄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만큼 체험학습으로 부모님의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한단다. 그러니 이번 체험학습은 선생님의 뜻에 따라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체험학습이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은 체험학습 장소로 자신들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다소 불쾌감을 표시했으나 어느 정도 내 말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한 아이가 질문을 하였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그 추억의 장소가 어디입니까?"
"그래, 우선 학교에서 가까운 저수지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난 뒤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려고 한다. 그래서 공부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훨훨 날려 보내기를 바란다."


내 말에 실망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구시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 뜻이 워낙 완강하여 애써 참는 눈치였다.

2006년 10월 27일 고립이 된 고라니1
2006년 10월 27일 고립이 된 고라니1 ⓒ 김환희
2006년 10월 27일 고립이 된 고라니2
2006년 10월 27일 고립이 된 고라니2 ⓒ 김환희
체험학습의 날 아침.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저수지(강원도 강릉시 인근)로 갔다. 교복이 아닌 자유 복장으로 치장을 한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우선 인원파악을 하고 난 뒤, 저수지 관할 동사무소에서 가지고 온 대형쓰레기봉투 5장을 조별로 나누어 주며 쓰레기를 주우라고 했다.

지난 월요일(10월 23일)에 내린 폭풍우 때문인지 저수지 주변은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인근 농가에서 흘러나온 축산 부산물 탓인지 물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조별로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갑자기 청소를 하던 한 아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큰 일 났어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2006년 10월 27일 구조가 된 고라니1
2006년 10월 27일 구조가 된 고라니1 ⓒ 김환희
2006년 10월 27일 구조가 된 고라니2
2006년 10월 27일 구조가 된 고라니2 ⓒ 김환희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아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몇 명의 아이들이 저수지 둑 아래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심 우리 반 한 아이가 저수지 둑 아래에 떨어진 줄만 알았다. 한편으로 청소를 시키기 전에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수지 수문 아래에 우리 반 아이가 아닌 고라니 2마리가 고립되어 있었다. 고라니는 잔뜩 겁에 질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기척에 놀라 둑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히 바닥이 미끄러워 자칫 잘못하면 아래로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고라니가 처한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2006년 10월 27일 고라니를 구해 주세요
2006년 10월 27일 고라니를 구해 주세요 ⓒ 김환희
2006년 10월 27일 소방관 아저씨, 고마워요
2006년 10월 27일 소방관 아저씨, 고마워요 ⓒ 김환희
잠시 뒤, 누군가가 연락을 했는지 119구급차가 도착을 했다. 그리고 구조대원에 의해 무사히 구조 된 고라니 2마리가 보금자리인 숲 속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비록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상황만큼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저수지 주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난 뒤, 아이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주지 주변을 산책을 하였다. 아이들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 속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번 체험학습은 이 아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되리라 본다.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과 강원일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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