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종로 보신각 앞. 날씨 쌀쌀하다.
"이번 가을에는 주민이 아닌 외부인은 대추리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추리에 갈 수 없어서 여기 서울에서 대추리 주민과 1000인의 문화 예술인이 함께하는 거리예술제를 하고 있습니다."
종각역에 갔다. 16일째를 맞은 '30일간의 종로 거리 예술제'는 주말이라 그런지 평일보다는 활기가 넘쳤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종로 한복판의 작은 무대는 흐름 속에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대추리 주민을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노래로, 영상으로, 그림으로, 시(詩)로 하는 싸움답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빼꼼 고개를 내밀어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갈 길을 걸었다. 25여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첫 공연은 '한국대학생문화연대'의 율동연대인 '리모션'의 몸짓이었다.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개사한 '평택이 좋아'라는 곡에 맞춘 몸짓이 펼쳐졌다.
"평택을 누가 지키나. 미군기지 온다 하는데. 보상의 기쁨도 발전의 기쁨도 모두가 거짓말이지. 지난 세월에 너와 내가 살던 평화로운 평택에 미군기지 안돼요 안돼. 평화로운 평택이 좋아."
흥겨운 트로트 자락에 술에 취한 한 아저씨는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무현이 XXX이다!"를 외치던 이 아저씨는 계속 이어지는 공연에서도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일어나 춤추기 어려운 세상이다.
'리모션'은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에 맞추어 몸짓 공연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도, 웃음을 떠뜨리기도 했다. 뒤에 걸린 강성녀 할머니의 초상화만이 웃지 않고 있었다.
'리모션'의 대표 이재웅씨는 "9월에 단원을 모집하던 중에 거리 예술제 소식을 듣고 첫 공연을 여기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 더 생각해보고, 더 많이 관심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뭐 이딴게 다있어?
공연 사이 사이에는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리모션'의 공연이 끝나고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의 영상이 스크린에 비춰졌다. <아빠가 필요해>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흰 늑대와 그 늑대를 '아빠'라고 부르는 소녀 영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그린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까지도 평택의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깔깔거리고 웃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100여명은 족히 되었다. 문화란, 예술이란 사람들을 공감케 하는 큰 힘을 지녔음을 새삼 느끼는 자리였다.
'풍경'의 노래가 이어졌다. '자전거 탄 풍경' 구성원 2명이 무대로 나왔다. 널리 알려진 그들의 노래 덕택에 어느덧 사람들은 보신각 앞을 가득 매웠다. <그렇게 너를 사랑해>, <너의 그 웃음이 좋아>,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종로에 울려퍼졌다.
'풍경'의 송봉주씨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답답한 마음에 부탁하시기에 거리예술제에 참가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문화 활동이 지속적이고 많아야 한다. 예술가들이 사회적인 일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공연 후 소감을 전했다.
'풍경'의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또다시 우르르 길 위로 흩어졌다. 스크린에는 조주상 감독의 '양성평등'이란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고 곧이어 가수 권순우씨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열광적으로 부르는 순간 종로의 모든 일이 멈추고 무대로 집중되는 듯했다. 그의 함성에서 나는 언뜻 평택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뭐 이딴게 다있어"로 시작하는 <자유인>이라는 노래를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권순우씨는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 이 노래가 오늘 공연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단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내내 그 가사가 왜 그렇게 내 귓가를 울렸는지 모르겠다.
30일이 다 지나가기 전에 또 찾아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해본다. 다음에는 꼭 너와 내가 함께 보신각 앞을 찾았으면 좋겠다.
| | "자원봉사하러 앞으로도 계속 올거에요" | | |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김진주· 홍석영양 | | | |
| | ▲ 자원봉사 나온 고등학생 홍석영양(왼쪽)과 김진주양. | | | 28일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모금을 위한 판매대에 서서 무대를 바라보는 두 고등학생이 보였다. 거리예술제에 자원봉사를 나온 김진주· 홍석영양이다.
18살이라는 그들은 종로 거리를 걷고 있을 또래의 고등학생과 달리 평택을 위해 자리에 서 있었다. 얼굴이 안 보이게 멀리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끄러움 많은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어떻게 자원봉사를 오게 되었나요?
"저희는 학교에서 NGO활동을 하는데요, 지난 인권영화제 때 대추리 관련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요. 이번에 거리 예술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 맞춰서 도우러 왔어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웃음)."
-자원봉사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이 구경하고 (판화와 기념품)을 사 가는 게 적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이런 일에 목소리 내러 와 주시는 분들도 감사하고. 오시는 분들도 감사하고요."
-또래 친구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친구들 보면 많이 관심이 없긴 하죠. 그렇지만 옳은 일에 참여해야죠. 참여를 해봐야 이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또 자원봉사하러 올 건가요?
"오늘 정태춘 아저씨 보러 왔는데 안 나오셨어요!(웃음) 주변 친구들한테도 같이 가자고 이야기 했는데…. 저희 앞으로도 계속 나올거에요!" / 정연경 | | | | |
덧붙이는 글 | 정연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