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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행의 비경 지리산 칠선계곡
가을 산행의 비경 지리산 칠선계곡 ⓒ 서종규
속살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옥빛 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려는 단풍나무 가지는 바람 따라 흔들거리는 물결처럼 너울거린다. 붉은 그림자들이 흔들흔들 너울거리자 계곡에 흐르던 물은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진다. 그대로 선경이다.

오래 전에 지리산 등산을 했던 사람들은 칠선계곡을 지루함과 위험의 등산로로 기억한다. 너무 길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칠선계곡. 그래도 한 번 빠져들면 그 비경에 사로잡혀서 다시 가고 싶다는 계곡, 그래서 꼭 한 번 더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꿈의 등산로다.

속살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비선담 옥빛 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려는 단풍나무 가지
속살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비선담 옥빛 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려는 단풍나무 가지 ⓒ 서종규
더구나 칠선계곡은 원시림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및 아름드리 주목, 신갈나무 고목, 졸참나무 고목의 높은 가지 끝에 뿌리를 내린 겨우살이까지…. 살아 있는 자연 그대로다.

지리산 칠선계곡은 원시림이 어우러진 우리나라 최대의 계곡이다. 흔히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칠선계곡의 출입이 가능한 곳은 추성동 매표소에서부터 비선담까지 4.5km 구간이다. 매표소부터 정상인 천왕봉까지 총 10km의 등산로 중 비선담부터 천왕봉까지의 5.5km 구간은 1999년부터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곰이 목욕하는 일곱 선녀의 옷을  감추었다는 선녀탕
곰이 목욕하는 일곱 선녀의 옷을 감추었다는 선녀탕 ⓒ 서종규
10월 28일 오전 7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25명은 지리산 칠선계곡의 가을을 찾아 광주를 출발했고 오전 9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을 출발해 약 500m 정도의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 고개에 오르자 산길이 나타났다. 산길을 따라 또 500m 정도 올라가자 몇 채의 집들이 고요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두지터'라고 하는 '두지동'이다.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두지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란다. 옛날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마을이었단다. 나중에는 등산하는 사람들의 민박으로도 이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지리산에서 나는 버섯이나 약초를 캔 다고.

칠선계곡의 가을
칠선계곡의 가을 ⓒ 서종규
두지동 앞을 지나 계곡에 들어가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쇠로 만들어진 '흔들다리'다. 칠선계곡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 왔다. 계곡에 흩어져 있는 많은 바위들, 그 사이로 흐르는 가을 물, 물가에 떠내려가는 낙엽까지, 우리는 가을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는 칠선계곡에 빠져들었다.

'흔들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산길은 좀처럼 물가로 내려가지 않았다. 지리산자락 가운데 유독 여성을 상징하는 지명이 가장 많으면서도 들어가면 갈수록 골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칠선계곡. 그 험준함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던 칠선계곡.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꼭 등반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칠선계곡은 자연 그대로, 햇살을 받아 그대로, 튀는 빛 그대로
칠선계곡은 자연 그대로, 햇살을 받아 그대로, 튀는 빛 그대로 ⓒ 서종규
따라서 칠선계곡 등반로는 계곡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 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발아래 흐르는 계곡 물소리만 아득하게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칠선계곡을 내려다보면서 걷는 등산로는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선녀탕 앞에는 계곡을 건너기 위하여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가을이 깊숙이 들어온 선녀탕에는 붉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비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가에 떠 있는 낙엽들과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물에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우리들은 가을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는 칠선계곡에 빠져들었다.
우리들은 가을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는 칠선계곡에 빠져들었다. ⓒ 서종규
일곱 선녀가 이 곳 웅덩이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의 옷을 훔쳐 바위틈에 숨겨 버렸다. 선녀들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 때 사향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걸어 놓은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전설이다.

선녀탕에서 50여m 올라가면 '옥녀탕'이 나온다. 선녀탕보다 훨씬 더 큰 물웅덩이이다. 맑은 물이 바닥까지 보이면서 푸른 옥빛을 내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인 옥녀탕을 노란 낙엽들이 고개를 떨구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시림 그대로, 썩어가는 아름드리 나무들에 달라붙어 자라고 있는 이끼들의 푸른 생명력
원시림 그대로, 썩어가는 아름드리 나무들에 달라붙어 자라고 있는 이끼들의 푸른 생명력 ⓒ 서종규
계곡의 가을에 흠뻑 젖어 몇 개의 다리와 나무계단을 지나가는 것도 망각할 정도로 칠선계곡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금년에는 가을 가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단풍이 아름답지 못하다는데, 그래도 이 곳의 단풍은 빼어났다.

계곡은 원시림이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수명을 다한 나무들은 그대로 쓰러져 썩어가고 있었다. 썩어가는 아름드리나무들에 달라붙어 자라고 있는 이끼들에도 푸른 생명력이 가득했다.

가을 가물로 단풍이 곱지 않다는 전국의 산인데 그래도 지리산의 단풍은 곱다.
가을 가물로 단풍이 곱지 않다는 전국의 산인데 그래도 지리산의 단풍은 곱다. ⓒ 서종규
낮 12시에 도착한 비선담 주변엔 이미 많은 낙엽들이 져 있었다. 몇 그루의 붉은 단풍나무는 말라가고 있었지만 푸른 비선담 물에 비친 모습이 더 나아갈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선경에 사로잡혀 어느새 올라와 버린 비선담에서 우리들은 멍하니 서 있었다.

매표소에서 4.5km 지점인 비선담까지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등산로의 끝은 비선담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길은 끝이었다. 칠선계곡에서 허용된 등산로의 끝인 것이다. 나머지 천왕봉까지의 구간은 자연휴식년제가 적용되는 출입금지 구역이다.

칠선계곡의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가을 물
칠선계곡의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가을 물 ⓒ 서종규
비선담을 지나면 칠선계곡을 상징한다는 칠선폭포의 위용이 있고, 칠선폭포 못지않다는 대륙폭포, 3층폭포 그리고 마폭포가 있단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는 듯한 60~70도의 급경사 바윗길과 쓰러진 고목사이를 지나면 청왕봉이 우뚝 솟아 있다는 것이다.

저 가로막은 나무를 타고 넘어 잘 드러나지 않은 길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면 비경의 칠선계곡을 지나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는데, 멈춰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비선담 물에 흔들거리는 나뭇잎 하나가 올라오면서 보았던 칠선계곡에 만족하고 어서 내려가라고 손짓한다.

비선담, 칠선계곡에서 허용된 등산로의 끝이다.
비선담, 칠선계곡에서 허용된 등산로의 끝이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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