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제1회 지리산 문화제가 열리는 산동마을 사포를 찾았다. 때마침 가을비가 촉촉하게 붉은 산수유를 적시고 있었다. 사포 마을은 구례에서 남원 쪽으로 가다가 산동읍을 지나 지리산과 점점 가까이 가면 나온다. 35가구의 사람들이 이 곳에 정겹게 살고 있다.
산수유의 고장 산동답게 여기 저기 오래된 산수유 나무가 즐비하고 눈에 잡힐 듯 지리산 성삼제가 아련하게 보였다. 성삼제를 넘으면 노고단이 나오며 반야봉과 세석평전을 지나면 천왕봉이 나올 것이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만복대와 정령치를 지나 운봉과 인월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진다.
"골프장 때문에 마을이 유명해졌어"
길에서 만난 아저씨는 "우리 마을이 별로 볼 것이 없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우리 마을이 구례에서 제일 유명한 마을이 돼 버렸다"고 골프장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저씨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골프장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골프장은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상징으로 존재하는 듯 했다. 아저씨 말대로 이 마을이 유명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지리산 자락에 건설하려는 골프장 때문이다.
이 마을 위쪽 그러니까 지리산 성삼제 아래 작은 산을 깎아 18홀이나 되는 골프장을 짓겠다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마을은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멋진 골프장 개발 계획 때문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골프장 건설을 막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을 위에 골프장 짓는다고 해서 미리 골프장이 지어진 곳에 가봤제. 가보니 사람 살 곳이 아니드만, 우리 마을에서 나오는 꼬랑물이 다 섬진강으로 흘러가는데 맑은 강에 골프장 제초제 씻은 물만 내려가게 생겼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조커써."
마을에서 마늘을 심으러 가는 아주머니가 툭 던진 말이었다.
이곳 사포에서 지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개발의 논리를 앞세운 개발론이 대립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지리산 문화제는 지리산을 개발하려는 개발문화와 후손에게 아름다운 지리산을 그대로 물려 주려는 생태보전 문화가 대립하는 경계에서 열린다는 의미가 있다.
골프장이 지어진다는 위쪽으로 가다 보니 동네 저수지가 하나 있다. 저수지엔 가을비에 젖는 구절초가 말없이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지리산 문화제 때에도 <산동애가>를 부르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산동애가>는 여순사건 때 진압군에 의해 참샘이 동산으로 총살 당하러 가던 백부전이라는 19살 먹은 처자가 불렀다는 노래다. <산동애가>는 구례를 대표하는 노래로 구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다.
산동애가와 백주전
<산동애가>는 구슬프기가 어미 잃은 아이 같고 비에 젖어 떨고 있는 어린 아기새 같다. 당시 19세로 알려진 백부전은 그가 생전에 살았던 산동 상관마을 주민에 말에 따르면 동네 아이들에게 "너 누구랑 장가 갈래?" 하면 "백부전이요"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녀를 끌고 가던 진압군들도 죽이기 너무 아까운 처자라면서 안쓰러워 했다고 한다. <산동애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다. 당시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불려졌는데 노래 가사 때문에 곧바로 금지곡이 되어 사라졌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한 채
가마귀 우는 골을 멍든 다리 절며 절며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 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
다리머리 들어오는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스러졌네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산동애가>는 당시 상관 마을 홍순례씨가 라디오로 흘러 나온 이 노래를 한 번 듣고 자기 마을 노래라 하여 기억하여 계속 부르면서 구전으로 전승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그 음반이나 가사는 찾아볼 수 없으니 홍순례씨가 아니었다면 그 노래는 사장될 뻔 했다. <산동애가>를 전승한 홍순례씨를 만나러 가봤는데 맹장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하여 만날 수는 없었다.
산동 상관 마을을 빠져 나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지리산 산자락이 어둑해졌다. 아마 지리산 문화제가 열리는 날도 이처럼 산 빛이 점점 어두워지겠지.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구슬픈 산동애가를 듣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현대사의 질곡과 더불어 개발과 생태 보전의 가치가 대립하는 사포에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지리산을 찾아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줄 것 같다. 제1회 지리산 문화제 "산동으로 오세요"는 오는 11월 4일과 5일 열리며 마을에서 1만원으로 홈스테이가 가능하다고 한다.
붉게 익어가는 산수유와 노란 빛으로 물들어 가는 지리산. 문화제도 참가하고 아이들과 함께 산수유도 따는 늦가을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산동을 떠나 올 때까지 가을비는 마른 산야를 적시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농민에게 힘을 주는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지리산 문화제 홈페이지(http://www.savejirisan.org/)
제1회 지리산문화제 안내 ‘구례 산동에서 만나요’
일시 : 2006. 11. 4 (토) 11:00~ 19:00
장소 : 지리산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주최 :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
주관 : 지리산문화제 추진위원회
후원 : 지리산생명연대 국립공원관리공단 구례문화원 구례군선거관리위원회 지리산대화엄사 불락사 지리산가족호텔 구례병원 혜미원한방의원
행사 프로그램
○지리산 장터마당(11:00~19:00)
사포마을 특산품 판매 - 산수유, 쌀, 산나물 등
먹을거리 판매 - 추어탕 등
○지리산 삶터마당(11:00~19:00)
짚신 만들기
흙다루기- 토우 만들기
사포마을 뒷산 산책 (12:00~14:00 안내부스 앞에서 출발)
달집태우기
산수유 따기 체험 (12:00~14:00 안내부스 앞에서 출발)
○지리산 지금여기마당(11:00~19:00)
지리산 ․ 반달곰 사진전
참여단체 알림마당
○지리산 어울림한마당(15:00~ 19:00)
길놀이 -구례좌도농악회
1부
천고제 -전영선(이매방류 살풀이)
개막선언
아름나라(지리산평화교회) 노래공연
지리산 시낭송 - 박남준
캐비넷싱얼롱즈 - 노래공연
화엄사합창단
판소리- 김소현
정용주- 노래공연
2부
마임 - 최희
정태춘 ․ 박은옥 - 노래공연
한보리 - 노래공연
곡성민요연구회 - 민요공연
산동애가(구전민요)- 홍순례
고명숙 - 노래공연
사포마을 어르신 장기자랑- 사포주민
대동놀이 - 구례좌도농악회
*공연순서와 시간은 출연진과 현장여건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문의 :지리산문화제 추진위원회
(061)782-8181
(063)636-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