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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을 차려주고 봉지를 열었습니다. 아버지 몫으로는 양면 겨울쟈켓에 마실갈 때 입으셔도 될 것 같은 멋쟁이 재킷이 한 장, 뱃일 하실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은 따뜻한 티셔츠가 두 장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 맛난 게 생기면 꼭 사위건 따로 챙겨서 보내주는 엄마에게는 꽃분홍색 방수재킷에 따뜻한 티셔츠가 두 장, 바지까지 얼른 셈을 해보아도 족히 십여만원은 훌쩍 넘어가는 양이였습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이거 팔면 돈이 얼만데?"
"쯧쯧쯧."
남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 드리는 것도 돈으로 따지는 제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가 봅니다.
"그걸 부모님이 사 입으실려고 해봐라. 더 비싸지. 그냥 암말 말고 부쳐드려!"
"그럼 원가라도 받을까?"
"원가는? 며칠 전에 고춧가루랑 참기름 왔다며?"
"그건 엄마니까 그냥 해주시는 거지"
"엄마라고 어디서 공으로 났을까봐! 너부터 계산하면 나도 원가받을게!"
"그럼 운임이라도 받을까?"
"쓸데없는 소리하면 도로 가져가버린다!"
말은 원가네, 운임이네 했지만 딸인 저도 생각지 못한 부모님 겨울옷을 챙겨온 남편이 참 고맙기 그지 없었습니다. 옛말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도 절을 한다지만 제가 생각해도 저는 절을 받기는커녕 도로 해도 시원찮을 만큼 그리 예쁘지도 않거니와 남편에게 속 마음을 고백할 때 "저는 남자하는 일에 토씨 하나 안 달고 열심히 내조만 할 거예요" 했던 것만큼 그리 고분고분하지도 못해서 가끔 남편의 저녁 한숨을 책임지고 있지요.
"열심히 내조만 한다더니 남자 하는 일에 토씨하나 안 단다더니. 내가 속았지!"
또 결혼할 당시 백 가지 중 한 가지도 맘에 드는 구석이 없다고 할만큼 친정부모님에게 구박을 당했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서운함, 그 많은 미움은 어디에 처박아 버린 채 철철이 옷이며, 간식이며, 딸인 저보다 더 챙기는 것인지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심심찮게 들어왔던 "발에 채이는 것이 남잔디. 해필이믄" 하던 소리도 남편이 보내주는 옷보따리에 묻혀 서서히 사라졌었습니다. 옷 장사를 접는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아쉬워하던 사람이 바로 친정 엄마셨거든요.
시장 갈 때마다 장모님이 좋아하는 반짝이 옷, 장모님이 좋아하는 꽃분홍색 티셔츠 장모님 신으면 좋을 것 같은 편한 구두, 장모님, 장모님…. 음정도 박자도 없는 장모님 타령에 기어이 아버지가 체면도 잊으신 채 "건이 아범은 장모만 좋아허드라"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하셨습니다.
더 고마운 건 부모님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힘든 일 하는 처남까지 챙겨주니 저 사람 속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 속이 전부 천사같다고 해야 할까요. 여튼 저는 오늘 동생집으로 시골집으로 옷 보따리를 부쳤습니다.
남편을 따라 야반도주를 할 때 한 가지도 챙겨오지 못한 옷보따리를 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골로 부쳐드립니다.
볕이 잘 드는 마당 양지쪽에 옷보따리를 펼쳐놓고 내 부모님은 또 조선팔도 제일 멋쟁이가 되어 패션쇼를 하시겠죠. 담밑을 지나는 이웃들 다 불러들여 달디단 엄마표 커피를 내놓으며 "이것이 다 우리 사우가 보낸 거요. 사우가 옷장시를 허는디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몰라. 돈 한푼 안 받고 철철이 옷 다 보내준당께! 이런 사우 없지?" 자랑이 늘어지시겠지요.
물론 자랑 끝에 그 옷들은 또 장롱 한켠에 고이 모셔지겠지요. 언제나 입을지. 과연 입어 보기나 하실지는 모르지만, 사위가 보내준 옷들에 파묻힌 내 부모님의 입가에 잠시라도 머물 그 웃음이 부모님에게는 사는 재미요 저에게는 진짜 효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