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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물품 매매대금 청구소송과 관련된 자료들. 이 자료들에는 하이마트의 '몸집' 키우기를 위한 대우전자의 각종 지원 사례들이 드러나있다.
지난 2001년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물품 매매대금 청구소송과 관련된 자료들. 이 자료들에는 하이마트의 '몸집' 키우기를 위한 대우전자의 각종 지원 사례들이 드러나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리점의 예고된 패배였나, 자유경쟁 체제에서 불가피한 희생이었나?

이젠 이름마저 낯설어진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1000여개 이상의 중·소형 대리점을 거느리던 굴지의 전자업체였다.

사라진 1000여 대우전자 대리점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거품처럼 무너진 대우그룹 신화와 더불어, 대리점을 운영해왔던 점주들도 하나 둘 간판을 내려야했다. 그나마 2000년대 들어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몇 안되는 대리점도 자취를 감췄다.

당시 대우전자 대리점을 운영했던 상인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대형 할인마트(양판점)인 '하이마트'의 등장을 꼽았다. 특히 저가 할인 공세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하이마트의 등장이 가격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중·소형 대리점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당시 대리점주들의 볼멘소리에 하이마트와 대우전자는 모두 시장경제·자유경쟁 체제에서 '희생자'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수 년이 흐른 지금, 대우전자의 빛 바랜 기억은 잊혀졌다.

'조용히' 끝난 대우전자 vs 하이마트 소송... 내막은?

대우전자-하이마트 물품대금 소송이란

지난 2001년 12월 시작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법률 분쟁은 두 회사가 사실상 '완전히' 결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대우전자는 하이마트가 물품 대가로 지불해야할 대금 3590억여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당시 분쟁 과정에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의 실질적인 관계가 속속 드러났다는 것. 대우전자는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하이마트가 물품대금을 갚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반면 하이마트는 사실상 계열사 관계를 내세워 대금 청구의 부당성을 주장한 것.

하이마트는 법원에 제출한 영업현황 문건(2000년 10월 2일 작성)에서 대우전자로 인해 오히려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하이마트는 부실채권 및 악성 재고로 인한 피해와 더불어 대우전자 직영점인 대우가전마트를 통폐합 하면서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결국 이 소송은 9개월여만인 이듬해 8월 하이마트가 대우전자에게 청구된 대금 중 3290억여원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대우전자와 하이마트는 이 소송에서 일반 대리점에 비해 가격 및 거래조건 등을 달리했다는 점과 함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입분 지원 등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특히 이 소송은 단순히 물품 대금을 둘러싼 마찰 뿐만 아니라, 양 업체의 핵심 관계자들이 운영권을 놓고 상호 비난전을 벌이는 등 두 업체의 감정적인 골을 깊게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오마이뉴스>는 대우전자가 지난 2001년 하이마트를 상대로 제기한 물품 매매대금 청구소송과 관련한 재판기록과 증거자료 등을 최근 입수했다.

그동안 이 소송은 세상에 좀체 알려지지 않았다. 소송 당사자였던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모두 '대외적인 공표를 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해 법률 분쟁을 조정 절차로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자료에는 대우전자와 하이마트의 관계와 하이마트가 대형 할인마트로 성장하는데 있어 대우전자의 역할 등을 비롯해 결과적으로 대리점이 '문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드러나있다.

그동안 세간에서는 하이마트가 대우전자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에는 단순한 물품 공·수급업체를 뛰어넘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하이마트의 전신인 한신유통주식회사(이하 한신유통)가 대우전자의 점포와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데다 직원들의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두 회사는 '계열사 관계였다'라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정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입장이다.

"대우전자 대표이사가 하이마트 기안용지 결제"

대우일렉트로닉스 최경아 홍보과장은 "과거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을 하이마트가 완전히 맡은 상태"라면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별도의 회사로 계열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사무관도 "두 법인 간 임원의 중복도 없고 지분도 없어 계열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시점으로 보자면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가 위장 계열사였다는 점은 두 회사의 핵심관계자들이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소송 당시 증인으로 출석했던 대우전자 방아무개 전 경영기획이사는 "대우전자 내부에서는 하이마트를 국내사업부와 해외사업부의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 정도로 생각했다"면서 "사실상 하이마트는 대우전자의 자회사이므로 회사(대우전자)가 방침을 정하는 자리에 하이마트는 참석만 할 뿐"이라고 증언했다.

하이마트 홍아무개 전 세무관제팀장도 "계속 결손이 발생하자 회사(대우전자)는 모회사로서 자회사가 부실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 결손금 지원을 해왔다"면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사이는 주종 관계"라고 위장 계열사임을 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증거자료로 제출된 90년대 초 작성된 한신유통의 결재 서류들에는 대우전자 대표이사나 국내영업본부장이 최종 결재까지 했다. 또 대우전자는 하이마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할 때도 매입분 478억원을 지원하고 유가증권 매입분 161억원도 지원했다.

결국 서류상으로만 본다면 지난 98년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게 국내 영업부문을 넘겨줬고 2002년 양 회사가 소송을 끝내고 채권을 청산함에 따라 계열사 관계는 해소된 셈이다.

그렇다면 대우전자는 하이마트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지원을 했을까. 대우전자 대리점에 직격탄을 날렸던 것은 '저가 전략'이었다. 이것은 대우전자의 전폭적인 가격 차별 지원과 독점판매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격차별·독점 판매권까지..."불공정 거래행위" VS "합리적 차별"

지난 98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물품공급계약서. 이 계약서에서 국내영업 판매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대리점) 판매를 위한 모든 영업행위를 위임했다.
지난 98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전자와 하이마트간 물품공급계약서. 이 계약서에서 국내영업 판매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대리점) 판매를 위한 모든 영업행위를 위임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난 97년 말까지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이체원가율(마진율) 85%를 적용해, 공장도 가격의 15%를 할인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다 대우전자는 92년부터 97년까지 결손금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하이마트에 연 평균 100억원을 별도로 지원해줬다.

그러나 이후 98년에 들어서면서 하이마트에 대한 물품대금 할인율은 더욱 눈에 띄게 커졌다. 98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 이체원가율 71.5%를 적용해 공장도 가격의 28.5%를 할인해주는 조건으로 물품공급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다 대우전자는 물품공급 계약서에서 제품의 공급과 동시에 '국내영업 판매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판매를 위한 모든 영업행위를 위임'했다. 뿐만 아니라 대우전자와 직거래를 해왔던 대리점에 대해서도 하이마트에 위탁관리를 위한 계약도 체결한다.

결국 대우전자를 간판으로 내건 대리점들은 하이마트를 통해 물품을 공급받는 동시에 양판점인 하이마트의 관리·감독 하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상 하이마트는 28.5%의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받아 대리점에 이보다 덜 할인된 공장도 가격으로 또 다시 떠 넘기면서 추가 이익을 남긴 셈이다. 그만큼 대리점은 하이마트에 비해 가격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우전자는 그동안 양산해왔던 중·소규모 자사 대리점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대우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전자는 소송 당시 대리점에 대해 '물품 대금의 11%를 판매장려금으로 지급했다'고 했지만 당시 대리점주들은 11%의 판매장려금 자체를 알지 못했고 실제지급된 사례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 당시 대리점주들의 주장이다.

반면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하이마트 양동철 과장(홍보팀)은 "시장경쟁체제에서 물건을 많이 사는 업체가 공급업체로부터 싸게 물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구매력의 차이로 생기는 거래 차이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합리적인' 가격 차별이라는 것이다.

"대리점주도 모르게 하이마트로 대리점 관리위탁"

대우전자는 이미 지난 80년대 말부터 양판점 체제 도입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사진은 대우전자와 일본 양판업체간 기술 역무계약서. 하지만 대우전자는 90년대 말까지도 지속적으로 대리점 구축을 위해 힘쏟았다.
대우전자는 이미 지난 80년대 말부터 양판점 체제 도입을 위한 수순을 밟았다. 사진은 대우전자와 일본 양판업체간 기술 역무계약서. 하지만 대우전자는 90년대 말까지도 지속적으로 대리점 구축을 위해 힘쏟았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무엇보다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98년 당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의 가격 지원과 대리점 관리 위탁계약 등이 일선 대리점주들은 거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난 90년부터 대리점을 운영해오다 2001년 폐업한 이상균(51)씨는 "대우전자 측이 대리점에 대해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지원해준 적도 있지만 그때그때 달랐고 실제로 지급된 경우도 거의 없었다"면서 "싼 가격으로 하이마트에 공급하면서도 대리점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아 대리점이 가격 경쟁에서 원천적으로 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또 "98년 이후에도 대우전자로부터 위탁관리나 하이마트를 통한 물품 공급 등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면서 "하이마트가 28.5%나 할인을 받으면서도 대리점에는 공장도 가격으로 물건을 팔았다면 대리점은 이중적으로 가격 차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이마트를 육성하기 위한 대우전자의 지원은 공급가격 부분에서 그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전자는 국내 영업부문을 하이마트에 이관하면서 대우전자의 영업 인력 등 인적 조직을 승계하는 한편 하이마트 채권 4765억원을 동결하고 그 변제기한을 유예해주기도 했다.

대우전자, 이미 80년대 말부터 양판체제 도입 수순

그렇다면 왜 대우전자는 이러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일까. 실질적인 이유는 대우전자가 양판점 체제로 확장을 미리 계획해 왔고 그 수순을 밟으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애초부터 대우전자는 중·소형 대리점을 양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양판점 체제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던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대우전자는 80년대 말부터 국내에 양판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수순을 밟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전자는 80년대 일본 가전 양판사인 죠우신(JOSHIN·上新)전기와 기술 역무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대우전자는 죠우신전기와 기술 역무 계약을 체결하는 목적으로 '일본의 양판점(이 가진) 선진 노하우를 적극 도입해 축적'한다는 점을 꼽았다.

이에 따라 대우전자는 89년부터 96년까지 직원들을 팀별로 구성해 일본에 장·단기 교육을 보내거나 죠우신전기 관계자들이 직접 대우전자를 찾아 출장지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전자는 3년 단위 계약시마다 매번 1200만엔(당시 환율 적용시 대략 9800만원)에서 1380만엔을 죠우신전기측에 지급했고 기술 역무 계약은 서류상으로는 98년 말까지 이어졌다.

관련 업체들, "대리점 살리면 살렸지 죽이려고 했겠나" 반박

하이마트의 등장은 대우전자 대리점의 급격한 도미노식 폐업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하이마트의 초기 성장은 대우전자의 가격 차별 등 각종 지원을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
하이마트의 등장은 대우전자 대리점의 급격한 도미노식 폐업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하이마트의 초기 성장은 대우전자의 가격 차별 등 각종 지원을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우전자 이러한 가격 차별 정책과 불공평한 거래행위에 대해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측은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러 당시 관계자들로부터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후신인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최경아 과장은 "하이마트와는 전혀 무관한 관계"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미 당시 국내영업부문을 담당했던 직원들이 상당수 하이마트로 옮겨 갔기 때문에 당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최 과장은 "대우전자 입장에서 볼 때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대리점을 육성하려면 했지 죽이려고 했겠느냐"면서 "당시에는 하이마트 등 양판이 그렇게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마트 양동철 과장은 "가격 적용 차이는 자유경쟁체제를 흐트리기 위한 것보다는 상거래의 (자연스런) 기준에 따른 것"면서 "삼성과 엘지 등 타 업체들도 하이마트와 같은 대형 양판점과 대리점들에 동일한 (가격) 조건을 제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우전자의 하이마트에 대한 독점적인 판매권 부여를 비롯해 차별 지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드러나면서, 눈물을 머금고 간판을 내렸던 전 대우전자 대리점주들도 집단 움직임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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