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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양희진 기자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가상으로 쓴 편지 형식의 영화평입니다. <편집자주>
태일이형 잘 있었어?

형한테 갑자기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영화 때문이었어.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던 형과 나의 재단사보조시절의 얼굴들이 다시 내 앞에 슬그머니 얼굴을 디밀고 들어오게 된 것은 그 영화,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말야.

영화를 본 날 나는 내가 아직도 이렇게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어.

형도 알다시피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나에게 공고조차도 사치였었어. 차비도 없이 억지로 통학한들, 도시락도 없이 간 학교는 나에게 허기를 의미할 뿐이었으니까. 학교 운동장을 병든 병아리 새끼처럼 멀거니 쳐다보다 돌아오는 그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어.

그래서 형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이 생의 질긴 목숨들을 이어가고 있었던 삼양동의 하꼬방을 나섰던 거야. 서울의 창동에 있는 어느 봉재공장의 재단보조 일을 시작했던 게 아마도1983년 여름 들머리였던 것 같아. 사람이 살면서 배워야 하는 모든 것을 그곳에서 전부 배웠어. 사람과 밥의 의미에 대해 그 때 알게 되었던 거야.

그 곳의 재단부형들과 미싱사 누나들, 일하다 싱거운 농담에 낄낄거리던 친구들, 나보다 더 작은 손을 가진 어린 여동생들.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이던 시다반장의 그 아이.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형, 그 때 우리들은 너무 가난했던 것 같아.

태일이형 기억나?

내가 처음으로 둘둘 말린 원단을 어깨에 메었을 때 나는 형들이 너무 부러웠어. 나에게는 한 개도 메기 힘든 원단을 두세 개씩 메고 나르던 형들이 너무 부러웠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내 몸뚱아리는 원단을 어깨에 올리고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어.

그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가난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내려면 최소한 튼튼한 육신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형, 이제 우리나라도 살기 좋아졌다고들 하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눈앞이라고 하기도 해. 그게 다 우리 같은 '공순이' '공돌이'들이 묵묵히 나라를 위해 밤낮으로 일만해서 그렇게 된 거래.

그런데 형, 그때 그랬잖아. 대한민국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선진국이 되면 다들 행복하게 먹을 거 입을 거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상해.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 다 돼 가는데 우리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먹을 거 입을 거 때문에 걱정하고 있어.

여전히 거리에서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어. 그러면 변함없이 경찰들은 그 사람들에게 몽둥이로 방패로 찍어대는 거야.

태일이형 보고 싶다.

이럴 때 형이 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 볼 수 있을 텐데. 이제 세상은 형 같은 사람이 필요 없나봐. 아무도 형을 찾으려고 안 해. 이제는 형이라는 존재가 부담스러운가봐. 모두들 우리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 아무도 우리들의 말을 들으려고 안 해.

그래도 나는 형이 보고 싶은데 말이야. 이제 그만 써야겠다. 별로 말도 못했는데 벌써 날이 새버렸어. 애써 끊은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조금 눈을 부쳐야겠어. 다음에 또 쓸게. 잘 있어.

2006년 10월 29일

덧붙이는 글 | * <인터넷 한겨레>의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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