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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실천시민연대
"광복군의 군가로 불렸던 '압록강 행진곡'을 작곡한 한형석씨는 당시에는 한유한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고, 작고하기 전까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쉽게 얘기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어울리는 분위기 있는 강좌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가 개강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노래해 온 가수 이지상씨의 강의로 진행되는 이번 강좌는 노래가 담고 있는 시대의 기억, 시대의 배경이 만들어낸 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강의는 이씨의 얘기와 직접 부르는 노래, 음악감상, 노래배우기 등으로 진행된다.

첫 강의는 '부당한 사회에서 명멸해간 노래들'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7일 진행됐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과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지고 불리었던 노래들에 대해 얘기하고, 그 노래들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날 강의에서는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창씨개명과 함께 일제에 충성을 맹세해 호가호위한 음악가들과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들여다보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호가호위한 대표적인 음악인으로는 '아! 신라의 달밤''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작곡한 트로트계의 거목 박시춘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인 홍난파, 현제명, 이흥렬 등이 거론됐다.

특히 박시춘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 대중음악가로 '결사대의 아내''혈서지원' 등을 작곡해 일왕에 대한 열렬한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혈서지원은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한글자 쓰는사연 두글자 쓰는사연/ 나라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라는 내용의 노래로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노래다. 여기에 박시춘은 작곡으로 옷을 입혔다.

ⓒ 인권실천시민연대
더 비극적인 것은 혈서지원이라는 노래가 해방 이후 '일장기'라는 가사가 '태극기'로 바뀌고, '나라님의 병정되기'가 '대한민국 국군되기'로 바뀌어 '혈청지원가'로 변신해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진중가요로 애창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반면 독립운동을 택했던 한형석, 정률성 등에 대해서는 후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록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부산대 교수까지 지낸 한형석은 작고하기 전까지 자신이 광복군들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고, 광복군 간부까지 역임했던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또 네 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해 대일항전의 위대함을 노래한 '연안송'으로 모택동의 찬사를 받고, 중국 개국일에 울려 퍼졌던 당시 중국군의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해 중국에서는 추앙받는 정률성(정부은)이지만 정작 우리의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그 자리는 친일 음악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날 강의에서는 '산동애가'를 비롯해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고 있는 노래들과 개발독재와 군사정권 시기에 정권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도 함께 얘기되었다.

이씨는 "노래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래를 만든 사람의 발자취, 노래가 담고 있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보는 또 다른 눈을 만들어준다"고 강좌의 의의를 설명했다.

3일(금)에 진행될 2강은 '전쟁을 멈추라. 이 해가 가기 전에 - 평화의 길, 평화의 노래'라는 주제로 얘기가 계속되며, 3강 '내 대신 매를 맞아 아픈 사람들 - 40년 에다가와, 88년 상계동, 2000년 난곡', 4강 '함께하는 걸음이 소중한 이유 - 오창익과 함께하는 인권 이야기'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5강은 '대자연의 품에서 청춘을 노래하자 - 함께 엮는 미산 음악회'라는 주제로 '더불어숲학교'가 열리는 강원도 인제 미산 개인산방에서 열린다.

문의: 인권연대(02-3672-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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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권연대 홈페이지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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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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