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김형욱(사망) 전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의 재임 중 일어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연루자 중 한 명에게 친필서한을 보내 직접 사과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재독교포인 이수길(78세) 박사는 6일 오전 한국기자협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백림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다"며 김형욱 중정부장이 자신에게 보낸 친필서한을 공개했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A4용지 3매에 달하는 이 편지에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해해 달라"는 등 표현을 쓰며 간접적인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수길 박사는 지난 195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전문의 학위를 딴 뒤 1966~67년 한국 간호사들을 독일로 파견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중앙정보부는 이 박사를 납치해 국내로 데려온 뒤 모진 고문을 가했다. 중앙정보부는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20여일 만에 이 박사를 독일로 돌려보냈지만,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휠체어를 타야하는 처지가 됐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당시 이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중정으로서도 무리한 수사였다는 점을 인정했던 셈이다.
김형욱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날 공개된 편지에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동백림 사건 조사 때문에)40일간이라는 보수를 받지 못하셨다니 본인으로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며 "약소하나마 200불을 보냈으니 촌지로 생각해 받아 달라"고 밝혔다.
김 전 중정부장은 또 "이 박사의 굳은 의지와 국가를 위하는 애국의 정은 본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이 박사를) 부득이 소환하지 않을 수 없게끔 심증이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니 이 박사가 이해해 달라"고 정중히 사과했다. 편지의 끝에는 '1967년 8월 22일 김형욱'이라는 서명도 나와 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백림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피해보상 및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위원장 오충일 목사)는 동백림 사건 진상조사 결과발표를 통해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과 장기 집권을 위해 기획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또 정부가 고문 조작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청한 바 있지만 아직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이수길 박사는 국가를 상대로 조만간 피해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납치 과정에서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 구타하고,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려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중정에 끌려가서도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말로만 듣던 온갖 고문을 다 이겨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곧 변호사들과 피해보상청구소송 가능 여부와 액수를 상의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독 광부·간호사 피땀, 정치적 이용 말아야"
한편 당시 간호사들의 독일 파견을 기획했던 이수길 박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1억5000만 마르크를 서독정부로부터 빌렸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기록이 조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한국이 서독으로부터 받은 차관은 상업차관이 아니라 후진국에 주는 무담보 재건차관으로 서독이 모두 32개국에 제공했다"며 "상업차관을 들여오는 조건으로 간호사를 파견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기간 중에 광부와 간호사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의 보도에 대해서도 이 박사는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 방문 당시 뤼브케 독일 대통령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거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육영수 여사의 옷을 찢어질 정도로 잡고 울었다는 일화는 전혀 근거 없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초점 맞추기 위해 퍼뜨린 무책임한 유언비어"라며 "이는 파독 간호사들의 피와 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