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을 지난 지 한참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무신경하게 살다가 날씨가 제법 차가워져 문득 생각을 해보니 가을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하루하루 색이 바래 가는 나무들의 잎사귀들은 잔 바람에도 힘없이 보도위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거리에는 여름벌레들의 앵앵거리던 울음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완만하고 느린 호흡으로 웅얼거리는 가을벌레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대학축제 시즌의 시작됐습니다. 나라마다 대학축제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리라는 것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과 일본의 대학축제는 도시에 있는 대학만 놓고 생각한다면 닮은 부분과 틀린 부분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의 지방 대학 축제가 아직까지 조금은 향토색을 띤다면 도쿄처럼 도시에 있는 대학들은 도회적인 분위기의 축제를 합니다.
축제를 주관하는 주체가 학생들이다 보니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 합니다. 그나마 한국의 대학축제에서 울려 퍼지는 사물놀이의 소리를 생각하면 아직 까지는 한국의 학생들이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과거와 소통하며 현재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이곳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단절된 채 미래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불안한 현재를 살아가기는 청춘들의 모습은 서로가 비슷하지만 남북분단을 비롯해, 온갖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청춘들의 사고가 훨씬 깊은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이지요. 문화의 차이를 우월의 대상으로 사고를 한다면 결국 저속한 국수주의나 답답한 민족주의로 흘러가겠지요.
낯선 나라에서 눈에 익지 않은 대학축제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이곳의 대학축제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공휴일인 매년 11월 3일 '문화의 날'이 들어 있는 주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이 됩니다. 이 기간 동안 대학은 휴강에 들어갑니다. 올해, 제가 적을 두고 있는 대학은 11월 2일부터 5일까지가 축제 기간이었습니다. 이 나흘을 전후로 1일과 6일은 행사 준비를 위한 임시휴강으로, 축제 때문에 6일간을 휴강에 들어갔습니다. 축제가 참 길지요.
이곳도 축제하면 술을 빼놓을 수 없는데, 술 마시고 몸을 못 가누어 사고 치기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일본의 대학에서 축제나 신입생 환영식 때에 술로 인한 사고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축제 때에 학교에서 술을 마시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술은 학교가 지정한 장소에서만 사고 마실 수 있습니다. 거의 못 마신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안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하지요)
술이 없는 축제라니 싱겁구나 하겠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문화행사를 하기도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판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여는 것이 주를 이룹니다. 한류 바람으로 해마다 '부침개'를 만드는 가게나 '김치찌개'를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한 둘은 꼭 있습니다.
물론 일본 학생들이 만드는 일본식 한국요리입니다(맛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일본 학생들이 만드는 한국요리를 보면서 이 친구들도 참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학축제를 보기 위해서 멀리서 혹은 학교 주위에서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하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띱니다.
어디서나 축제는 흥이 있어야 재미나는 법이지요. 이곳도 나름대로 '서양화된 흥'이 있기는 하지만, 투박하고 감칠맛 나는 우리들의 축제가 조금은 살갑게 그리워지는 하루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신문의 제 블러그에도 실려 있다습니다.http://wnetwork.hani.co.kr/sake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