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부터 이번 달 3일까지 나흘간 우리 집에서 보따리학교가 열렸다. 우리쌀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서 시작된 보따리학교는 '길동무(www.gildongmu.org)'공동체에서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움직이는 농가학교다. 산청 지리산 자락과 전남 곡성의 산촌에서 동시에 열린 가을 보따리학교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모였다.
늘 그러하듯 이 학교는 학비(참가비)가 없다. 서로서로 음식도 가져오고, 침낭도 가져오고, 일과 놀이를 할 두 손과 맨 입을 가져오면 된다. 보따리학교의 지속가능을 위해 감사한 마음 크기만큼 '길동무'에 성금을 내면 된다. 참석자들의 배낭 속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푸짐했다. 따끈따끈한 온돌방은 피곤한 몸을 편히 쉬게 해 주었다.
한날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어른이 네 사람. 초등학생 한 사람. 중학생 두 사람. 열 여덟 청소년 한 사람이 모였다. 나이나 지식이나 가진 돈들은 다 달라도, 사는 곳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 다르지만 똑 같이 생활했다. 똑 같이 먹고 똑 같이 생각했다. 하는 일도 정해진 게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뭘 하라고 강제하지도 않는다. 다만, 저녁을 먹고 밤이 찾아오면 아랫목 이불에 발을 넣고 도란도란 서로의 느낌을 나눌 뿐이다.
늘 그랬듯이 새벽은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신령스런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고, 눈만 들면 사방천지가 가을단풍으로 움직이는 산수화였다. 서로서로 재주 하나씩을 내 놓더니 배움과 가르침이 오갔다. 참나님은 수벽치기를 내 놓았고, 나는 태극기공 18식을 내 놓았다. 원보님은 일곱 차크라에 대해 설명하면서 호흡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초등학교 4년 짜리 재강님은 굴뚝도 만들고 빨래도 하였다. 첫날밤은 노무라 소지로(Nomura Sojiro)의 연주곡을 틀어 놓고 춤을 추었다. 모두 빨래 줄에 걸린 빨래가 되자고 하였고 오카리나 음률에 따라 누구는 펄럭이고 누구는 너울거렸다.
원보님은 머리를 빡빡 밀고 왔다. 열 여덟 살 원보님은 다니던 고등학교를 관두고 귀농학교에서 공부했다. 올 여름에는 황토 집 한 칸을 직접 지었다. 뽀얀 머리통이 예뻤다. 또 하룻밤은 침묵으로 말하기를 하였다. 깊은 이야기는 침묵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낮 시간의 진실한 노동은 밤과 휴식을 더욱 달콤하게 하였다.
집 고치기가 이번 보따리학교의 주제였다. 흙 다루기, 나무 다루기는 기본이다. 모닥불에 고구마 구워먹기도 기본이다. 아궁이에 불 때기, 돌과 나무 옮기기도 기본이다. 놀이와 노동이 하나다. 햇빛님은 수도 파이프 보온 덮개를 네 개나 만들어냈다.
지리산 기슭 산청과 섬진강 강가 곡성에서도 보따리학교가 함께 열렸었다. 보따리학교 학생들은 사흘 동안 농가에서 지내고 함께 3일 일정으로 강화도 마리학교에서 열리는 생명축제로 떠나갔다.
부모를 떠나 이토록 오랫동안 이렇게 먼길을 차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면서 다녀 본적이 없다는 보따리학교 후기가 올라왔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마음대로 판단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면서도 잘 어울리면서 자기를 조절 해 본 그 아이가 잘 커 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