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산이 나를 이끄는것 같아요
산이 나를 이끄는것 같아요 ⓒ 김선호
가을도 막바지입니다. 입동이었던 어제(7일)는 눈까지 내렸습니다. 눈이 내렸으니 더 이상 가을이라고 우길 명분이 없어져 버렸지만 다행이 지난 일요일(5일)의 산행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물들이는 마지막 가을의 모습을 실컷 만나고 왔습니다.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축령산과 나란히 능선으로 이어진 서리산을 종주하고 왔습니다. 잣나무가 울창하기로 이름난 축령산휴양림은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서리산은 '철쭉 축제'가 열려 해마다 오월이면 떠들썩한 산입니다. 두 산은 능선으로 이어져 멀리서 보면 하나의 산에 커다란 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는 듯 보입니다.

두 산의 성격이 전혀 다른데도 그리 느껴지는 건 축령산(879m)과 서리산(832m)이 해발고도가 비슷한 산이기에 그렇습니다.

가을이 간다
가을이 간다 ⓒ 김선호
그러나 축령산은 암벽이 특징인 바위산이어서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서리산은 흙산인 까닭에 부드러운 산새가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산입니다. 두 산을 개별적으로 올라도 좋을 것입니다. 사실 산 하나를 오르는 일도 벅찬 일입니다. 특히, 축령산 같은 경우는 그렇습니다. 등산 초입부터 오르막입니다. 밧줄을 타고 가야할 만큼 가파름이 간단치 않습니다.

오르막이 끝나면 거기서부터는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발길에 차이는 길로 이어집니다. 밧줄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커다란 바위를 넘어 가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너야 하는 곳도 부지기수입니다. 가히 남성적이라 할 이 산은 기암괴석에 붙은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곤 하지요.

호연지기, 이런곳에서 키우면 어때요?- 축령산, 수리바위-
호연지기, 이런곳에서 키우면 어때요?- 축령산, 수리바위- ⓒ 김선호
독수리를 닮았다 해서 '수리바위', 남이 장군이 호연지기를 기른 곳이라 '남이바위'가 축령산에 있습니다. 이 바위에 올라서면 아래는 아득한 벼랑입니다. 아찔한 벼랑 끝 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피면 과연 '호연지기'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축령산은 우리가족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장소입니다. 처음 제대로 된 산행을 한 곳이니까요. 첫 산행은 '남이 바위'까지였습니다. 힘에 부쳐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지요. 이젠 축령산 정상까지 단숨에 넘나들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축령산이 남성적이라면 서리산은 여성적인 느낌
축령산이 남성적이라면 서리산은 여성적인 느낌 ⓒ 김선호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가 다행스럽게도 빗나가 하늘은 맑고 쾌청합니다. 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산 중턱 이후부터 산을 덮일 듯 쌓여 있던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날리고 있습니다. 날이 화창하고 바람이 불고 오늘따라 두 아이도 컨디션이 좋은 모양입니다.

'축령산 정상이 나를 자석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고 오늘따라 씩씩한 딸아이가 말합니다. 대견하고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산을 데려 다닌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산행을 다니는 동안 아이 둘은 몸도 마음도 많이 자랐습니다. 오늘은 축령산에서 '호연지기'를 덤으로 가져갑니다.

한마리 웅크린 새 같은, 서리산의 억새꽃
한마리 웅크린 새 같은, 서리산의 억새꽃 ⓒ 김선호
그러나, 축령산을 넘고 다시 산행이 시작되는 서리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힘이 딸립니다. 하긴, 축령에서 서리산으로 넘어가는 길의 가파름이 만만치 않습니다. 두 산의 봉우리가 비슷한 해발고도를 가졌다지만 축령산을 기껏 다 내려와서야 그곳에서 다시 서리산이 시작되는 까닭입니다. 능선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서리산을 오릅니다. 다행인 것은 서리산은 육산이라는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 흙의 부드러움도 많이 완화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바위를 밟는 느낌보다는 훨씬 가볍습니다. 서리산 능선을 걸어가는 이 길은 아기자기 한 멋을 주기도 합니다. 울창하지는 않지만 길 양편에 억새가 사열하듯 서 있기도 하고 계절을 잊은 듯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한 잣나무가 늘어서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정상 능선에 이렇게 울창한 잣나무 보셨나요?
정상 능선에 이렇게 울창한 잣나무 보셨나요? ⓒ 김선호
능선 길 양옆에 억새가 하얗게 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억새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순하게 누웠다 바람이 지나고 나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아이들 표현에 의하면 '웅크린 새 한 마리 같다'는 억새꽃이 늦가을인 지금 가장 풍성할 때입니다. 오가는 등산객들로 북적인 축령산에 비하면 '철쭉'피는 봄이 아니면 인적이 드문 서리산은 한가롭기 그지없습니다.

덕분에 작은 무리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서리산 억새 밭에서 한참을 밍기적거려 봅니다. 서리산 능선 길에도 늦가을이 바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참나무 잎새들이 바람에 날리며 하나둘 낙엽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유난히 단풍이 고운 참나무군락을 이곳에서 만납니다. 늦은 가을, 서리산 정상을 수놓는 참나무 단풍은 붉은 듯 노랗고, 누런 듯 붉은 빛을 띱니다. 시린 연두 빛을 간직한 참나무 단풍이 그토록 고운 줄 내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서리산 정상 능선의 철쭉나무 군락
서리산 정상 능선의 철쭉나무 군락 ⓒ 김선호
늦가을의 햇살이 강렬한 탓은 아무래도 나뭇잎을 저리 곱게 물들이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상엔 잠시동안 머뭅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잠시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능선 길은 한동안 철쭉나무 군락입니다. 매년 오월의 끝자락을 연분홍으로 화사하게 물들이곤 하는 길입니다.

늦가을에 들어선 철쭉은 연분홍 꽃 행렬 대신 붉은 단풍으로 화사합니다. 수분기가 다 빠진 철쭉 잎새는 몰라보게 작아져 있고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철쭉도 붉게 물든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거니와 나란한 철쭉나무들이 어느 것 하나 같은 색이 없습니다. 능선을 따라 쭉 늘어선 철쭉나무가 빚어내는 단풍도 또 하나의 장관입니다.

잎을 떨구고 월동준비를 마친 서리산
잎을 떨구고 월동준비를 마친 서리산 ⓒ 김선호
철쭉의 행렬이 끝나면 그곳에서부터는 다시 내리막길입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합니다. 길은 낙엽으로 덮여 있고 어디에 돌멩이가 묻어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끄럽기까지 하니 늦가을 산행은 오르기 보다 내려가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일입니다. 바싹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가파른 산길을 내려섭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잎 진 나무보다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걸 보니 어느새 산을 거의 다 내려온 모양입니다. 잎을 다 떨군 정상은 이미 겨울이 시작되었고 산 아래쪽은 한창 가을빛이 충만합니다. 갈빛의 참나무군락 사이로 노란 생강나무 잎새가 돋보입니다.

솔잎이 이불처럼 덮힌 잣나무 숲
솔잎이 이불처럼 덮힌 잣나무 숲 ⓒ 김선호
생강나무가 빚어낸 노란색은 그 아래쪽에 자리한 잣나무 군락이 있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산을 다 내려왔습니다. 돌로 깍은 다람쥐가 품어 주는 약수로 목을 축이며 아릿한 성취감에 잠시 취해 봅니다. 잠시 쉬어가라고 아름드리 잣나무 아래 나무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가을을 갈무리하느라 숲엔 연신 낙엽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입동 무렵 눈도 내려 숲을 덮었습니다. 입동에 눈이 내리면 겨울이 춥다고 한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이제 월동 준비를 서둘러야겠습니다.

열심히 달려 왔으니 잣나무 아래서 잠깐 쉬세요.
열심히 달려 왔으니 잣나무 아래서 잠깐 쉬세요. ⓒ 김선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