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울산의 정자해변을 거쳐 3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경주시 지역으로 들어선다. 시골 맛이 나는 관성해수욕장을 지나면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눈에 들어온다.

▲ 월성 원자력발전소 전경
ⓒ 김영명
월성원자력발전소는 총 시설용량 277만 9000kw의 가압중수로형(4기) 발전소다. 우리나라 총 전력 수요의 40% 이상을 충당하는 원자력발전이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환경친화적 에너지라고 하지만, 방사능 유출문제와 폐기물 처리문제로, 수용과 배척의 해답이 간단하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이곳에는 2011년, 2012년 준공 목표로 신월성 1호기와 2호기가 건설 중에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100% 수입 석유로 발전하는 화력발전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 태양력·풍력 등의 재생에너지자원 개발은 미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 봉길 앞바다 200m 떨어진 곳의 문무대왕 수중릉
ⓒ 김영명
또 이곳은 작년 주민투표를 거쳐 경주시가 수천 억원의 특별지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방사능물질 폐기장을 설치키로 합의를 본 지역이다. 찬반 주민들 간 갈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해변에 세워진 발전소 때문에 해안도로는 내륙으로 휘어져 돌아 나오는 새 길을 만들었다.

다시 국도를 따라 북으로 곧장 가면 봉길 해수욕장에 닿는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 해안에서 약 200m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자그마한 갈색 바위섬이 떠 있다. 이름 하여 '대왕암'(사적158호)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유골을 동해에 수장하면 바다의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고 하였다. 이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이곳에 장사 지낸 뒤 이 바위를 대왕암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문무왕이 동해구(東海口)의 대석 위에 장사지냈으며 속전(俗傳)에는 왕이 용으로 변했다"는 기록. <삼국유사 권 제2>에도 '대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만인 영륭 2년 신사(681)에 세상을 떠났는데, 유언에 따라 동해 가운데의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냈다. 왕은 평시에 지의 법사에게 항상 말하였다.'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려하오"라는 기록이 있다.

▲ 동서남북 사방으로 물길을 터 놓은 대왕암 내부
ⓒ 김영명
이 바위를 실측한 바 동서남북 사방으로 물길을 텄는데, 파도를 따라 동쪽 수로에서 맑은 물이 들어와 서쪽 수로로 빠지게 되어있다. 인공을 가한 흔적으로 보이며 그 안에 넓은 공간이 있고 그 한가운데 거북이 모양의 큰 화강암(길이3.6m, 너비2.85m, 두께0.9m)을 놓았다. 이 화강암 밑에 유골을 안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왜구의 노략질이 있었기에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왜구를 막겠다고 했을까. 일본과의 질긴 악연이 지금까지 지속되는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쉼 없이 부딪혀 부셔지는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천년을 잠들고 있는 대왕의 넋이 고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왕릉들과 대비해서다. 삼국통일의 위업과 국력이라면 천마총 이상의 거대한 왕릉을 조성해 봄직한데, 화장한 한 줌의 뼈를 그것도 바다 가운데 있는 자연석 바위섬을 사후의 안식처로 삼은 혜안이 존경스럽고, 또 해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정신이 고귀하다.

▲ 거북이 모양의 큰 화강암이 놓여있는 대왕암 내부
ⓒ 김영명
해방 직후 유엔한국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온 메논(인도인)을 우리나라 여류시인인 아무개가 안내 책임을 맡았는데, 하루는 여주에 있는 영릉(세종대왕릉)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메논이 한국 채류 때 받은 고마운 대접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 시인을 인도로 초대하여, 인도 무굴왕조시대 5대 황제인 샤자한의 왕비 무덤인 '타지마할'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시인이 타지마할을 보는 순간 한국의 영릉을 자랑했던 일이 생각나서 무척 부끄러웠다고 술회한 글을 어느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영릉을 자랑했던 일이 아니라, 웅장한 타지마할과 초라한 영릉을 대비해 보고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된 것을 부끄러워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인도 무굴왕조의 왕비릉인 타지마할
ⓒ 김영명
22년이나 걸려 조성된 일개 권력자의 거대한 왕비무덤 때문에 흘린 인도 백성들의 피와 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위대한 역사적 유산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죄 없고 선량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인 것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봉길 해수욕장에서 대종천을 따라 난 길을 타고 경주 방면으로 0.5km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3층 석탑 2기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탑이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완공을 못보고 죽은 부왕의 유지를 받들어 세웠다는 '감은사'에 절집은 간 곳 없고 빈 절터에 두 탑만 우뚝 서 있다. 감은사를 세울 당시는 절 금당 밑으로 동해의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어서 해룡이 된 부왕이 조수에 따라 감은사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
ⓒ 김영명
삼국유사 '만파식적' 조하(條下)의 주(註)에 인용된 '감은사 사중기(寺中記)'에는, "문무왕이 왜병 진압을 위해 이 절을 창건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2년(開耀·682년) 공사를 끝냈다. '금당 밑 섬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는 구멍 하나를 냈는데(排金堂●下東向開一穴)'이 구멍으로 용(문무왕)이 금당으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였다. 왕이 내린 유조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했고,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 했다"고 적어놓고 있다. 절 이름도 원래는 진국사(鎭國寺)였는데, 부왕의 은혜를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 감은사지 3층 석탑
ⓒ 김영명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분들께 폐 끼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도 평소에 제대로 그 은혜에 보답한 기억이 없으니 나는 '감은(感恩)'이라는 말조차 입 밖에 낼 자격이 없는 자라는 생각이 든다. 감은사지에 홀로 남은 두 석탑처럼 외롭고 안타깝고 그리고 그립다. 예전에 무심하게 보아 넘긴 이 두 삼층 석탑이 예사로운 석탑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데도 오랜 세월이 흘렀듯이, 은인의 고마움도 예전엔 그렇게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지금에야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신이 미울 뿐이다.

감은사지를 뒤로 하여 구룡포 방향의 바닷가로 나오면 오른 쪽으로 팔작기와지붕을 한 이견대(利見臺)를 만난다. 별다른 특징도 없고 도드라져 보이는 지역도 아니어서 스쳐 지나기 쉬운 곳에 세워져 있다. 동해의 용이 되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이 용으로 변해 그 모습을 보인 곳으로, 주역의 '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지금의 정자는 1970년 발굴조사 때 드러난 초석들과 신라건축양식을 근거하여 새로 지은 것이다. 정자의 마루에 올라서 보면 동해 쪽으로 멀리 대왕암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용으로부터 옥대와 대나무(대나무 재료로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만듦)를 받는다.

▲ 멀리 바다 쪽에 대왕암이 보이는 이견대
ⓒ 김영명
그 피리는 나라가 역경(외침, 가뭄, 역병 등)에 처했을 때 소리를 내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였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피리가 하나 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 때 없는 생각도 든다. 북핵, 집값폭등, 양극화심화, 경제침체 등 실타래 엉킨 것처럼 어지러운 난제들이 피리 한 소리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피리소리는 그 사회의 합의된 리더십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출중한 지도자의 피리소리에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난을 헤쳐 가는 모습이 고대 신라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 행선지인 구룡포로 발걸음을 옮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