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가 보여준 또 하나의 특징은 '부시 패권주의'의 역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부시는 2000년 대선에서 안보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대권을 쟁취했고, 2004년 대선과 중간선거에서도 "미국은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앞세워 미국 유권자의 안보 불안 심리에 호소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부시 행정부가 상징처럼 내세웠던 '전쟁'이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은 선거 유세 막판에 "민주당에 표를 주는 것은 테러리스트를 돕는 결과를 낳는다"며 미국식 색깔론에 의존하는 한편, 이라크 이슈를 최소화하고 경제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으나, 결국 성난 표심을 달래지는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부시 행정부가 '21세기 제국'의 야심을 품고 강행한 이라크 침공이 미국 국내외 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심대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 볼 때,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중동에서 '미국 패권의 약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각종 국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부시 대통령은 그 자신이 주적으로 삼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 역시,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부시의 영향력과 신뢰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접전 지역의 공화당 후보들이 부시 대통령이나 딕 체니 부통령의 지원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은 이러한 미국 내의 기류를 잘 보여준다.
또한 공화당 패인의 핵심적인 요인이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대외정책의 실정에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선을 불과 2년 앞두고 공화당이 참패를 했다는 점에서 부시의 레임덕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부시 행정부는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뿐만 아니라, 부시와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의 견제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라크 정책, 극적인 변화 없을 듯
결국 이번 미국 중간선거는 이라크 정책과 관련해 'stay the course'를 고수한 부시 행정부에 대해 'change the course'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승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고 해서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극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이라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수가 없을 뿐더러,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당 내 목소리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점진적인 감축을 주장하고 있고, 일부는 완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미 내전 상태에 돌입해 있고, 이라크 군경이 치안을 유지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어, 즉각적인 감군이나 철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실정'을 밝히는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라크 침공의 주역인 도날드 럼스펠드의 해임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고,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지 않거나 부시 행정부의 중대한 실정이 또 다시 밝혀지면 일부에서는 '탄핵'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은 이라크 전쟁 기간에 미국 정부와 군납업체 사이의 유착관계를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이들 기업체와 연관되어 있는 체니의 앞날도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파간 갈등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염증이 극에 달해 있고, 상생과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 및 공화당을 상대로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역사상 최초의 하원 의장으로 내정된 낸시 펠로시는 선거 승리 직후 "협력과 통합"을 역설하기도 했다.
럼스펠드의 해임, 이라크 정책 변화로 이어질까?
결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고 잘못된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정치적 심판'의 의미는 갖고 있으나, 미국을 이라크 수렁에서 건져내는 것도, 미국의 침공과 분파간 갈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라크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해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 일부 의원들, 심지어 일부 네오콘들과 군장성들조차 요구해온 럼스펠드 해임을 전격 수용한 것이 주목된다. 럼스펠드는 이라크 침공을 주도해온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이란 이름을 달고 미군의 신속화와 경량화 그리고 유연성 증대를 추구하면서 이라크 정책 실패를 대표하는 인물로 거론되어 왔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전까지 럼스펠드와 남은 임기를 함께 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선거 결과가 참패로 드러나자, 민주당에 대한 유화책과 여론 수습책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의 해임이 이라크 정책 변화의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국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