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미국의 중간선거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핵 문제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의 향방은 한국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중간선거 이후 두 가지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나는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6자회담 '안팎'에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정권에 비해 북한과의 협상 및 북핵 문제 해결 의지가 강한 민주당의 이러한 분위기 조성은 부시 행정부에게도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하나는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대북강경책을 주도해온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사임했다는 것이다.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및 한미·미일동맹 재편 등 군사 패권주의에 강한 집념을 갖고 있던 럼스펠드의 사임은 국무부 주도의 현실주의적 실용노선이 강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의회가 입법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외정책은 미국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이라크 문제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언론과 국민의 반응도 결코 부정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북핵 불용'
흔히 대북정책과 관련해 민주당은 온건하고 부시 행정부는 강경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히려 '북핵 불용' 의지는 부시 행정부보다 민주당이 더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핵 비확산' 체제의 유지이다. 여기에는 핵 보유국이 더 이상 늘어나지 말아야,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199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불거진 북핵 문제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가 무력 사용과 협상 노선 두 가지 카드를 들고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 주도의 제재를 부과한 것도 민주당의 대외정책의 핵심에는 '핵 비확산'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민주당계 전략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북핵 문제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11월 7일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북핵 문제는 핵비확산체제를 강화하는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예산과 사찰 능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 채찍뿐만 아니라 당근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온건하다기보다는 북한의 핵보유를 막겠다는 것을 확고한 목표로 삼고, 주고받기식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되 이것이 안될 경우에는 무력 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울러 민주당이 북미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 의식과 함께, 북미 직접대화 거부 및 6자회담 고수가 중국의 영향력을 키워주고 있다는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시'
이에 반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념적 편향과 함께 '잔머리'가 개입되어 있어 자기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악의 축" 및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이 상징하듯,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 네오콘 등 일부 강경파들은 '정권교체'를 선호해왔다.
또한 '잔머리'를 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한 위협론'을 이용해 MD 구축 및 한미·미일동맹 강화에 무게중심을 둬왔다. 사임한 럼스펠드를 필두로 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압록강 너머 중국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갈피를 못잡고 갈팡질팡 해왔다. 북핵 문제 초기에는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고 했다가 외교전문가들로부터 '뭐 하자는 것이냐'는 핀잔을 들었다. 일방주의로 무장한 부시 행정부가 유독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6자회담을 들고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해 민주당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북핵 해결과 정권교체 사이의 모순관계에 있다. 부시 행정부가 공언해온 것처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고받기식 협상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정치적·경제적·안보적 우려를 해소해주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이란과 함께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삼은 김정일 정권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정권교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기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대북정책은 부시 행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북핵 불용'을 내세우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북핵 무시'로 일관해온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가 역사와 정권재창출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민주당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차이는 '강온'에 있다기보다는 '선명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당은 '북한이 핵을 못 갖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가질 테면 가져봐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탈환함에 따라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악의적인 무시' 정책도 지속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북핵 문제가 악화될수록 부시 행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민주당의 목소리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 재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또 다시 성과없는 6자회담이 된다면, 민주당의 공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적 사고'가 되겠지만,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통한 '탈출구' 모색을 시도할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 잔여 임기인 2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은 크게 네 가지 현안이 있다. 이라크 정책, 이란과 북한 핵문제,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라크 전쟁은 이미 '제2의 베트남'이 된 상황이고, '테러와의 전쟁' 역시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하는 한 '승리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이란 핵문제의 타협 여지는 북한 핵문제보다 훨씬 좁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제2의 베트남 전쟁', '실적 없는 테러와의 전쟁', '핵무장 국가 북한'과 '핵무장 문턱에 도달한 이란'을 남겨두고 임기를 마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고, 공화당의 정권 재창출도 물건너 가게 된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후대의 평가와 정권재창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뭔가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절박한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 네 가지 가운데 가장 해결 가능성이 높은 문제가 바로 북핵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반미적인 국가이면서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가장 원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핵포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 해제, 에너지 지원, 평화협정의 체결, 북미수교 등은 부시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의 지지까지 받을 수 있다.
김정일과 부시, '윈윈' 선택할까
물론 북핵 문제 해결이 부시 행정부의 업적(?)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이고, 다른 하나는 북핵 '동결'이 아니라 '폐기'이다. 이러한 방식으로의 해결은 북미 양자대화를 통해 북핵 동결에 머물렀던 제네바 합의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통큰 협상 의지를 보인다면, 차기 정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이롭다. 일단 북미 양측이 6자회담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면, 이 합의에 대한 미국 의회의 지지와 협력을 확보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