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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존

"아니야! 아니야!"

남현수는 마구 손을 휘저으며 눈을 번쩍 떴다. 남현수의 앞에는 여전히 마르둑과 김건욱, 무와이가 나란히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현수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 마지막은 보지 못하겠군요. 너무 충격이 큰 탓이었겠죠."

마르둑의 태연한 언행은 남현수에게 밉살스럽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남현수도 또다시 7만 년 전을 여행하면서 알아차린 바가 있었다.

"마르둑씨는 하쉬의 외계인이 아니죠? 처음에는 7만 년 전의 하쉬와 지금의 마르둑씨가 비슷하게 생겼을 거라는 상념으로만 보았지요. 하지만 기억이 되풀이되면서 확실해졌습니다. 7만 년 전의 그들은 마르둑씨와는 전혀 다릅니다."

"의외인데요? 좀 늦게 알아차리셨는데 솔직하게 보신대로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전 하쉬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죠."

마르둑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 내에서 말하자면 지금은 과거의 기준에서 하쉬의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하쉬 밖으로 나간 생명은 모조리 새로운 터를 찾는 일에 실패했거든요."

마르둑의 말에 남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르둑씨도 과거 하쉬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안드로이드일 뿐인가요? 그렇다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죠?"

마르둑은 언젠가부터 동작을 정지하고 초점 없는 눈을 뜬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김건욱과 무와이를 돌아보며 또다시 싱긋 웃었다.

"분명히 전 생식을 통해 존재하는 생명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전 이 안드로이드들과는 다릅니다. 하쉬의 생명을 수호하는 특별한 존재랄까요. 지금으로서는 하쉬 그 자체라고 하는 편이 났겠지요. 물론 가이다, 아니 지구 그 자체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남박사님보다는 미천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지구의 입장을 대변한다고요?"

남현수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슬쩍 웃음이 새어나왔다.

"난 그런 사회적 지위가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마르둑씨는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야말로 지구의 입장을 대변할 만하지 않았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 세계를 대표하지 지구를 대표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의 착각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러기를 바랐지만요."

남현수는 마르둑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가 남박사님을 통해 얻고 싶은 정보는 두 가지였습니다. 과연 남박사님이 우리가 찾는 지구의 대표 생명인가였는데 그것은 확인이 되었습니다."

"잠깐 마르둑씨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7만 년 전의 일속에서조차 나는 잡혀간 연인을 애타게 찾는 솟이라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남현수의 말에 마르둑이 가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까는 알게 되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한다고 여겼는데 확실히 아직 자각이 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먼저 남박사님이 보았던 7만 년 전의 일을 되짚어 보세요. 솟의 입장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까지 볼 수 있지 않았나요?"

"그거야 그쪽이 가진 기록도 있기 때문 아닙니까?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제공한 기록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불시착하여 짐리림 일행이 나가기까지입니다. 그 후의 일들은 순전히 남박사님이 가진 기록에 의존한 것입니다."

남현수는 마르둑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역시 딱히 마르둑이 말을 지어낼 이유는 없다고 여겨졌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7만 년 전 '키'라는 존재였습니다. 바로 지구를 대표할 생명 중 하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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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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