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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큰아들 ⓒ 주경심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2007학년도 원아모집을 한다는 공고가 났다. '벌써'하며 달력을 뒤적거려보는데, 달랑 한 장만 남은 달력이 '벌써'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11월 중순!

큰아이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졸업식이 코앞이고, 엄마 품밖에 모르던 작은아이의 입학을 준비해야 한다니 32㎞(?)의 인생속도에 머리가 아찔해져 온다.

작은아이는 올해 다섯 살이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노는 엄마의 유일한 변명거리이자 소일거리였던 아이가 내년에는 엄마의 품을 떠나 유치원으로 반드시 가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두 아이를 같이 보내고 싶었지만 만만찮은 교육비에 그냥 "험한 세상 탓" 만을 하며 뭐든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욕심과 열정을 눌러왔던 것이다.

조기교육에 매달리는 다른 아이들의 현재 교육수준에 비하면 집에서 노는 다섯 살 우리 아이는 한참 뒤처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을 증명하듯 여섯 살쯤 되면 웬만한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대기자 명단에 오르기도 힘들 정도로 요즘은 아이들을 일찍들 보내서 환경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분위기들이다.

그러니 다섯 살이 되도록 학습지, 학원,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나는 시대에 발 맞추기는커녕, 선 자리도 못 지키고 뒷걸음질치는 늦된 엄마인 것이다.

그 늦은 엄마도 꼭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드는 나이 그것이 바로 여섯 살인 것이다. 그런데 큰애가 다니는 유치원 역시 선착순이 아닌 추첨식이라 원서를 넣는다고 해도 입학할 확률이 높지는 않아서 이곳저곳을 동시에 알아봐야만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빈자리가 없다는 얘기뿐이다. 사회문제로까지 번지는 저조한 출산율로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들이 많다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만은 예외인 듯하다. 저 많은 아이들, 저 많은 눈동자들은 저출산의 심각성 대신 예비 유치원생을 둔 엄마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낙타의 심정으로 뚫어야 할 난관일 뿐이었다.

큰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둘째를 보내려는 이유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 ⓒ 주경심
두 번째 난관은 바로 교육비이다. 국공립의 교육비는 사립에 비해 30% 정도 저렴한데다 봐주는 시간은 두어 시간 더 길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그렇기에 안될 줄 뻔히 알면서도 몇 십 명의 대기자 명단 뒤에라도 아이의 이름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에 반해 사립은 교육비가 비싸다. 국립보다 좋은 환경과 교육정도를 내세우지만 사실 매일 매일을 감시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는 한 피부로 느끼기엔 역부족인 문제들인 것이고, 만만찮은 교육비를 부담해야 할 입장에서는 한푼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유아교육비 지원을 받는다 해도 분기별로 내야 하는 교육비는 만만찮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데다 급식비는 따로 부담을 해야 하니 어느 땐 돈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큰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원서를 내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익숙함 때문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 가장 곤욕을 치르는 부분이 바로 적응력이라고 한다. 부모의 교육열이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좋은 곳에 입학을 시켜도 아이가 적응을 못하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일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빠가 다니는 유치원 문턱을 일년 동안 넘나들며 가족참여수업과 운동회와 여름축제를 겪은 아이는 이젠 웬만한 선생님과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 예비 유치원생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입학을 해서 겪어야 할 선생님과의 친화력, 유치원 길에 대한 두려움이 해결됐으니 그것만으로도 큰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인 것이다.

예쁘기만한 내 딸! 합격명단에 있기를 바라며

그나저나 원서를 내려면 사진이 필요했다. 머리를 곱게 빗겨서 사진관으로 데리고 갔다. 돌 사진 이후로 처음 찍어보는 사진관 사진에 아이도 약간 긴장을 했는지 커다란 눈망울도 작아지고, 자연스럽던 미소도 어색하게 변한다.

몇 번이나 자세교정을 한 뒤에 나온 증명사진! 내 딸이어서인지 예쁘기도 하다. 이 사진을 시작으로 이제는 날개를 펴고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고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섭섭하다.

자식은 나이를 먹어도 자식이라고,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불안함은 내가 엄마인 이상은 떨쳐낼 수 없는 마음일 것이다. 여섯 살부터 겪어야 할 입학전쟁에서 아이의 이름이 추첨을 통한 합격명단에 있기를 바라며 입학원서를 작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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