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사랑한 아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며, 은환을 부인으로 맞으며 가족주의적인 모습을 탈바꿈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갔다. 더욱이 극 후반부에는 연장을 하게 되면서 기둥인 어머니의 부재와 나이보다 많은 연기를 해야 했음에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극 중반부에서는 정자를 연기한 추상미의 열연이 돋보였다. 거칠고, 독하면서 철이 없는 정자 연기를 추상미는 깨끗하게 해냈다. 동정표까지 모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연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출연진 전원이 자신의 옷을 입은 듯 각자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방송 초기 다소 산만했던 극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특히 태수모와 파주댁이 묘한 조화를 이뤄내며, 정애리와 이경실의 궁합은 찰떡궁합이었다. 그리고 한 평생 자로 잰 듯 딱딱하지만 속에 자식사랑이 누구보다 큰 강한 어머니의 존재는 드라마의 핵심이었다.
드라마는 1960~70년대 성장기 배경이 현재에 어떻게 재현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 강인한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워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며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사랑은 21세기에도 통했다.
물론 미자를 무조건 싫어하는 모습, 정자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모습에서 다소 이기적인 시어머니의 모습 등 독불장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원작에 없던 명자(김나운 분)를 자식으로 키우는 모습이 동시에 방송되면서 태수모는 무조건 핏줄에 의한 자기자식 사랑으로만 한정짓지 않았다. 핏줄이 아니지만 핏줄처럼 지내는 파주댁과 명자를 통해 단선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그녀의 자식 사랑의 깊이도 그만큼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방송 초기부터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품은 어머니를 주축으로 자식들의 일과 사랑. 그 속에서 갈등이 반목되면서 조금씩 <사랑과 야망>은 21세기형 시대극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작가 김수현은 이번에도 여전히 갈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화해와 용서도 함께 보여주면서 '삶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를 보여주는 듯했다. 소소한 일상까지도 놓치지 않고 일부러 에피소드를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자연스레 표현했다는 점도 그녀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끊임없이 그녀는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전작 <부모님 전상서>에서 신보수주의라는 말을 들으면서 한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 등 가족의 모습을 그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러하다.
특히 12일 마지막 방송에서는 모든 가족들의 일상을 관찰하듯 태수와 은환은 훈이 아기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정자와 그의 남편 조봉진도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몄고, 태수와 미자도 끊임없이 반목했지만 사랑으로 보듬어 안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끝까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부르짖는 미자의 모습에서 드라마는 마침표를 찍었다. 이는 작가의 의도였다. 계속 이어지는 삶을 어떻게든지 봉합할 수가 없어 주인공들의 일상의 한 시점에서 끝을 내리고자 했다고 한다. 오히려 이러한 엔딩은 좀처럼 여타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점으로 '삶은 계속 된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연장방영 되면서 80년대 배경으로 전환해 어머니 죽음 이후의 자식들이 나이가 들어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 집중하게 돼 시대극이 홈드라마의 성격으로 바뀌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