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나?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은 썰렁했다.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본회의장에서 한광원 열린우리당 의원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의원은 여야를 합쳐 40명이 채 안 됐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무위원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자리를 비운 250여명의 의원들은 대정부질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것일까. 그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인 대정부질문. 국정감사와 더불어 국회의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이다. 물론 질문하는 의원들만 있으면 대정부질문은 가능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듣고 다른 의원들의 견해를 참고하는 것은 모든 의원들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들을 필요가 없다면 그냥 작은 방에서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싸울 때는 다 모인다
그렇다면 본회의장이 항상 이렇게 썰렁할까. 아니다. 대정부질문 때는 이렇게 자리를 비우지만, 모든 의원이 모일 때도 있다. 바로 싸울 때.
지난번 사학법 통과를 위해 여야는 총동원령을 내려 몸싸움을 벌였고,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밤을 새워가며 끈끈한 동료애를 과시했다. 지난 9월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한나라당은 단상까지 올라가 출석부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본회의장에서 얼굴 보기 힘든 의원들이 많다. 학교처럼 출석을 근거해 점수를 주면 꽤 많은 의원들이 낙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석도 결석이지만 지각도 심각하다.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가 정시에 시작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대표만 참석하면 열리는 당 회의를 제외하고 본회의나 의원총회, 상임위 회의 등은 제 시간에 열리기 힘들다. 느긋하게 회의장을 찾는 의원들 때문.
17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 2004년 김원기 국회의장이 "6선의원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회의시간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회가 신뢰를 얻는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허사였다. 초기에는 달라지는가 싶더니 요즘도 본회의 개회시간은 10분 이상 늦어지는 게 예사다.
지난 10월에는 임채정 국회의장이 아무런 연락없이 1시간 가까이 본회의장에 늦게 들어온 한나라당을 '비난'했다가 한나라당이 이에 반발해 본회의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몸은 본회의장에, 마음은 문근영에
하긴 본회의장에 들어와도 의원들의 관심은 자리마다 설치된 터치 스크린 방식의 최신식 컴퓨터로 향한다.
일부 의원들은 뉴스 검색부터 자신의 홈페이지 관리, 미니홈피 사진 감상, 그리고 문근영, 성유리 등 연예인들의 근황을 체크한다. 인터넷 쇼핑을 하는 의원도 보인다. 의원들간의 친목 도모도 빠질 수 없다.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든 말든 삼삼오오 모여 밀담을 나눈다. 몸은 본회의장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연간 1억400만원가량의 수당을 받는다. 정책개발비 2500만원, 정책홍보관련 비용 1300만원, 기타 국정감사 준비비, 통신료 등이 일년에 7000만원 정도다.
바쁜(?) 일정에 비하면 그리 많은 돈이 아니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다 혈세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민들의 돈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자리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내일(15일)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결사항전을 천명하고 있어 또다시 여야의 힘겨루기가 본회의장에서 벌어질 것 같다. 오랜만에 활기를 띨 국회 본회의장. 외출했던 의원들이 돌아올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