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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도약시킬 것인가.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본떠 99년 결성된 ‘아테나 프로젝트’(Athena Project)는 과학기술 분야 고학력 여성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다른 지원 정책과 구분된다. 따라서 프로젝트 참여 주요 인사들 역시 대학 교수진으로 구성돼 있고, 자원봉사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기금이 고갈될 2007년이 프로젝트 종료 시점. 관계자들은 이후 영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UKRC) 등 연계 기관이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서 수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아테나 프로젝트는 로열 소사이어티(Royal society, 왕립학회)의 지원을 받고 있고, UKRC는 기금 마련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 BP, 화이자 등의 기업들과 과학기술 관련 학회들의 지원도 받고 있다.

아테나 프로젝트 위원회엔 영국의 대표적 여성 과학기술인들인 UKRC 주요 멤버가 참여하고 있어 이 두 기관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의장은 영국의 대표적 세포생물학자인 케임브리지대 낸시 J 레인 교수, 부의장은 로열 소사이어티의 펠로이며 대표적 천문학자인 조슬린 벨 버넬 교수다.

여기에 아네트 윌리엄스 UKRC 소장, 테레사 리즈 카디프대학 총장보, 질 새뮤얼스 영국여성과학기술인협회 부회장, 전 의장이며 초기 멤버인 줄리아 히긴스 임페리얼 칼리지(런던) 교수 등이 참여, 총 12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테나 프로젝트가 영국 과학기술계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99년 프로젝트 시작 당시 이 프로젝트에 관계한 사람은 낸시 J 레인 교수를 중심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극히 소수였다. 당시 과학혁신부 장관인 세인즈 베리 경은 물리학과 공학 분야 3092명 교수 중 여성이 단 97명이고, 여자 대학원생 비율이 18%나 되는 토목공학 분야에선 단 1명의 여교수도 없는 등 극히 불평등한 과학기술 인력 현황에 대해선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정작 충격을 받은 것은 여학생이 생물학도의 거의 50%를 차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생물과학 분야에서 여교수 비율은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고위직, 전문직으로 갈수록 성비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이것이 곧 경쟁력 저하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체감했던 것.

아테나 프로젝트는 ‘고학력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커리어 증진과 연구역량 강화, 그리고 기업에서의 관련 분야 여성인력의 고위직 진출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사항은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의 과학계 여성인력의 아카데미 네트워크(Scientific Women's Academic Network, SWAN)에 기초해 UKRC에서 5년에 걸쳐 고학력 여성 취업을 위한 조항으로 재정비한 일명 ‘SWAN’ 강령에 명시돼 있다.

© Institute of Physics, UK resource centre for women
© Institute of Physics, UK resource centre for women ⓒ 여성신문
SWAN 강령은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진출이 불평등하다면 해당 기관이 자체 문화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 여성인력의 높은 유실률은 해당 기관이 당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긴급 사안이다 ▲과학기술 전공 여성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학문적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데 지장이 있다면 이는 해당 기관이 즉각 고려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등 여성인력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구체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을 기조로 6가지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2005년 7월부터는 영국 내 모든 대학에 이 강령을 적용 중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SWAN 강령을 잘 준수하는 대학들에는 매년 금·은·동 메달을 수여하며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이밖에 2002년부터는 아테나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정받아 로열 소사이어티에서 ‘아테나상’을 제정, 대학들에 수여하고 있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과학기술계 여성인력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매년 보고서를 발간한다는 것이다.

‘아테나의 과학기술 인력 조사’ (Athena's surve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ASSET)는 2003년 23개 대학 2172명의 남녀 과학자, 2004년 대학 및 연구기관 6500명의 남녀 과학기술 인력 등 이공계, 의학계, 산업계, 공립·사립 연구소,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 등에 종사하는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2006년 보고서도 발간됐는데, 설문조사는 9월 5일부터 10월 20일까지 6주간에 걸쳐 전개됐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실무를 관장하는 캐롤라인 폭스 프로그램 매니저는 “ASSET를 통해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경력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 과학기술 여성인력이 취직한 뒤 승진하는 데 있어서 남성과의 차이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며 “ASSET는 궁극적으로 과학기술 분야 여성인력에게 자신의 전공과 사회 환경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며 의욕을 고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이디어로 출발…대학사회 성평등 일궜죠"
‘아테나 프로젝트’의 산파 낸시 J 레인 교수

▲ 로열 소사이어티 회의실에서 만난 ‘아테나 프로젝트’의장 레인(오른쪽) 교수와 초창기부터 프로젝트 실무를 맡아온 캐롤라인 폭스 프로그램 매니저.
"처음 시작할 당시 예산은 극히 적었죠. 뜻을 같이 모아 모인 이들의 아이디어로 예산의 부족함을 메워 나가면서 오늘날의 ‘아테나 프로젝트’가 만들어진 거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체크무늬 투피스에 날렵한 호피가죽 힐, 그리고 시종일관 경쾌한 태도. 자전거 타기를 취미삼아 늘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뒷모습만 본다면 7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찬 낸시 J 레인 교수는 ‘아테나 프로젝트’ 탄생의 주역이자 현재 프로젝트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이름 뒤에 ‘OBE’(Officer of the British Empire, 대영제국 제4급 훈작사) 영예가 따라다니는 영국의 대표적 세포생물학자이기도 하다. 자녀 2명 중 1명이 뇌성마비 장애를 앓아 일찍부터 세포 생물학에 전념한 까닭이다.

그가 말하는 아테나 프로젝트 탄생 배경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지금부터 8년 전인 99년 레인 교수는 줄리아 히긴스 임페리얼 칼리지 교수와 함께 고학력 여성인력 진출을 고민하다가 로열 소사이어티에서 외무를 담당하는 브라이언 팬더에게 이를 얘기했고, 팬더가 2년을 시험 기간으로 잡고 예산 지원을 약속하면서 프로젝트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실무진으로 프로젝트의 살림을 맡아줄 캐롤라인 폭스 현 프로그램 매니저를 만나면서 프로젝트 사업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대학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기에 참여자들도 태반이 정규직 대학교수들이었고, 그래서 자원봉사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들 참여 대학교수들이 실제 학교 현장에서 정책을 논의하던 당사자들이었기에 정책적 아이디어는 늘 풍성했고, 폭스는 이 아이디어를 실제 상황으로 옮겨놓는 일에 전념했죠. ‘여성인력 진출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란 말을 할법한 데도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준 여교수들의 공이 크죠."

아테나 프로젝트는 여성 과학기술도를 지원하는 대학에 금·은·동 메달을 수여해 성 평등 정책의 효과를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여학생들이 수상 대학에 진학하도록 적극 유인함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레인 교수는 "이제까지의 수상 대학들이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 에든버러대 등 굳이 성 평등 정책을 쓰지 않더라도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명문 대학들이다. 따라서 앞으론 성 평등 정책 효과를 전 대학에 골고루 높이기 위해 특색 있는 군소 지역 대학들도 아테나 메달의 수혜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레인 교수는 특히 아테나 프로젝트가 영국 학문의 상아탑인 로열 소사이어티의 인정을 받아 그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데다, 매년 한 차례씩 ‘아테나’ 이름으로 그 유서 깊은 곳에서 강연을 주최할 수 있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아테나 프로젝트가 영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오? 무엇보다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대학에 알림으로써 사회인식 제고를 이뤄냈죠."

지난해 8월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열린 사이언스 카페에서 DNA 연구 성과를 남성 동료들에게 빼앗긴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주제로 강연한 후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 여대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레인 교수는 한국의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정책에 대해 무엇을 제안하고 싶을까.

"이번에 런던에서 열린 제2차 한·영 여성 과학자 포럼에서 나도선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전길자 전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등 과학기술계 여성 리더들을 만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한국은 이 같은 여성자원을 활용해 여성 과학기술 인력을 위한 역할모델을 더욱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해요.

또 아테나 프로젝트팀이 일련의 설문조사를 통해 여성인력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고 각종 통계를 만들어내면서 그전엔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깨닫고 정책 제언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처럼, 한국 역시 이런 설문조사 작업을 활발히 병행해야 정책 진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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