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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험생들이 배포된 시험지를 살펴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지난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험생들이 배포된 시험지를 살펴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 권우성

아들, 고생 많았다!

아들, 너는 수능시험 준비하고 치르느라 많이 힘들었겠지만, 아빠는 너를 시험장에 내려주고 집으로 오면서 차 안에서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2006년은 정말 힘든 해다. 수능시험 300여 일을 앞둔 지난해 12월, 그러니까 고3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차디찬 칼바람이 우리 가족에게 불어왔다.

엄마가 난소암 판정을 받은 것 말이다. 엄마는 생과 사의 긴 터널을 넘나들며 투병하느라 '고3 엄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칠순에 가까운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너와 우리 가족의 뒷바라지를 다 해주신 것이다. '고3 할머니'로서 역할을 해내신 것이다.

수술 중에 걸려온 전화에 아빠는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는 엄마의 치료와 병원생활이 힘들었지만 더 걱정스러웠던 것이 있었다. 행여 네가 지금의 현실에 동요되어 흔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가끔 너에게 하얀 거짓말을 했지만 다는 숨길 수 없었다.

또 너도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봐 엄마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 놓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빠는 알 수 있었다. 너도 기억날 것이다.

엄마 수술을 며칠 앞둔 일요일, 네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 하나를 깼다. 그 때 아빠를 보는 얼굴이 그릇을 깨서 죄송하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 표정은 불길한 예감과 불안해 하는 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수술하기 위해 입원하러 가는 날, 엄마 볼에 입맞춤하면서 "엄마, 걱정마세요, 수술 잘 될 거예요"라며 엄마를 위로했던 너였지만 수술 중에 걸려온 전화 속에 묻어있는 너의 목소리는 아빠를 눈물나게 했다.

아들 대로야, 우리 가족은 대단하다. 엄마는 광주에서 맞던 항암제가 내성이 생겨 또 한번 벼랑 끝에 섰지만, 그 절망을 이겨내고 서울을 오가며 다시 항암제를 맞아 많이 호전되었다. 그리고 성당 교우들과 고3을 위한 기도에 거의 참석하였다. 너를 위한 기도를 한 것이다. 얼마나 놀랄 일이냐.

엄마의 모습에서 너희도 힘을 얻었겠지만, 엄마도 아들과 딸에게 감동하고 힘도 얻었단다. 늦잠꾸러기 네 동생 예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 고3인 너보다 더 일찍 학교에 가는 것도 그렇고, 책상 앞에 지난번 성적표를 붙여놓고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엄마에게 투병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단다.

또 우연히 할머니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네가 잠자기 전에 매일 엄마를 위한 기도를 했다는 것이, 아들로서 당연하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큰 감동이었다.

너는 7살 때 14시간이나 걸렸던 대수술을 견뎌내고 건강하게 자라 늘 모범생으로 우리 가족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너는 또 잘 견뎌내 준 것이다.

어젯밤 네 이모는 엄마가 수능시험 전에 잘못될 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빠도 못된 생각이 들 때마다 두려움에 겁도 났지만, 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난 2004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교문에 수험생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부적이 붙어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지난 2004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교문에 수험생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부적이 붙어 있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 권우성
너는 최선을 다했다, 아빠는 행복하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고 오늘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그래서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성적이 잘 나오면 좋겠지만 아빠는 크게 실망하지 않으련다. 네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로야, 오늘 하루 정말 고생했다. 정시모집까지는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인생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라.

수능시험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 순천만에 찾아드는 겨울철새도 만나고, 철 지난 바닷가도 걸어 보렴.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세월과 시간을 안고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자연과 대화도 하며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오늘 시험은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필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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