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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간의 주위는 시끄럽다. 학생들을 머리를 단정하게 깎으라고 훈계하는 소리. 친구들과 술 약속하는 전화소리. 택배가 왔다고 큰소리로 불러내는 소리. 청소시간에는 창틀청소를 집중적으로 하라는 마이크소리. 그렇지만 주위의 소음도 헤드폰 하나면 끝이다. 나와 세상을 철저하게 차단한다. 아니 다른 사람과 나를 격리시킨다. 나와의 소통은 오로지 음악뿐이다.
이루의 <까만 안경>과 소통하고, 민중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와 소통한다. 그리고 가끔은 이재성의 <촛불잔치>나 신촌부르스의 <골목길>과 소통한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소통한다. 때론 모르는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공간은 완전히 나만의 공간이다. 나만의 세계다. 또 먹고 살기 위해 영어로 소통도 한다. 알파벳과 더 친하기 위해 깨알 같은 글자에 눈을 처박기도 한다. 얼굴이 하얀 사람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드라마 < Friends >도 보고 만화 < The Iron Giant >도 보고, 영화 < The Legend of Fall >도 본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면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을 왕따시킨 것인지 모른다. 좌우간 즐거운 왕따생활이다. 사실 나의 이 공간에서 그것마저 없었다면 난 미쳤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공간을 허락해주는 이런 여유가 나는 좋다. 작은 모니터에 나의 상상과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 인터넷 바다에 내보내는 편리함이 나는 좋다. 이 편리함이 나의 가운데 토막을 힘들게 만들어도 나는 인터넷이 좋다. 컴퓨터가 좋다.
인터넷이 컴퓨터가 잠시라도 짜증을 내거나 내 손끝의 명령을 거부하면 난 미쳐버린다. 아니 분노한다. 무형의 존재에게 분노한다. 손끝의 노동이 헛되어서가 아니다. 단지 소통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소통의 중단은 진짜로 나는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된다. 출구가 없어진다. 나만의 비상구가 없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시끄러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세상으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세상으로.
내 공간에는 기도방도 있고, 작은 다원(茶園)도 있다. 한 잔의 차가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덩달아 몸도 편안해진다. 이 작은 공간에는 따분한 이론의 공작소도 있다. 교육행정학. 교육정치학. 교육경제학. 교육개혁론. 머리가 아프다. 아니 복잡해진다. 이럴 땐 역시 바로 옆에 성서가 준비되어 있다. 성서에 눈을 보내면 교황 바오로 2세가 은은한 미소를 보낸다. 돌아가시면서 하셨다는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말을 속삭이는 듯하다.
바로 건너편에는 유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가 지긋이 나를 건너다 본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그 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손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인디언은 한 모금의 물을 마시기전에 먼저 어머니 대지에게 약간 부어 주었다. 그것이 어머니 대지에게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음식을 떼어 어머니 대지의 가슴속에 사는 영혼들에게 나눠 주었다(라코타 족)".
바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지혜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도 고수레를 했다. 제사를 지낸 후에도 들에서 일을 하다 먹는 새참이나 천렵을 할 때도 고수레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마운 마음이 사라져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 농부에게 자연에게. 단지 그들이 믿는 신에게 감사할 뿐.
나만의 공간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생각의 자유와 사유의 나래는 제한이 없다.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공간이 좋다. 작지만 좋고 초라하지만 고맙다. 이런 여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오늘도 내 체온에 의해 따스해진 이 작은 공간은 뭔가 열심히 탐색하고 꿍꿍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변화한다. 진화한다. 그래도 나만의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내일 아침에도 반갑게 인사하면서.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