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문화생활=영화관'이라는 등식에 충실하다가, 지난달 오랜만에 콘서트를 보러 가게 됐다.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야외 콘서트. 주인공은 성시경이었다. 새로운 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기한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커플들과 여성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나도 여자친구와 그 틈에 끼어 성시경이 언제 나오나 무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행요원들의 '두더지 잡기'에 흐트러진 공연 분위기
신인 가수들이 나와 분위기를 잡고 들어가자 성시경이 노래를 부르며 무대로 걸어 나왔다. 열광적인 함성이 들렸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언니들, 야광봉을 흔드는 언니들, "오빠~"라고 소리치는 언니들 등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성시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팬들은 가수의 한순간 한순간을 담기 위해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영화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열기가 콘서트장을 뒤덮었다. '영화 볼 돈 좀 모아 콘서트장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찍지 마세요", "성시경 찍지 마세요", "카메라 치우세요"라고 말하며 관객들의 촬영을 막았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사진 촬영을 막는 그들의 정체는 공연 진행자들. 그들은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듯 팬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그 앞으로 달려가 촬영을 막았다.
이쪽에서 플래시가 터져 가면 저쪽에서 터지고, 앞에서 터져 가면 뒤쪽에서 터지고. 수백명의 팬들의 카메라를 10여명의 진행요원들이 감시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사실 다 함께 즐기는 공연장에서 플래시까지 터뜨리며 '출사' 나온 것처럼 사진을 찍고 있는 팬들의 모습은 보기 안 좋았다. '플래시라도 좀 꺼주었으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 촬영은 조용히 공연을 감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피해를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진행요원들의 움직임과 외침이었다. 그들의 행동이 공연 분위기를 흐트려 놓았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공연 내내 그들이 주의를 주는 목소리와 손짓이 성시경의 노랫소리와 움직임을 잠깐 잠깐 가렸다.
티켓을 샀다는 것은 사진 찍을 수 있는 권리도 구입한 것
대부분의 공연은 사진 촬용이 금지돼 있다. 특히 음악회나 무용공연이 그렇다. 금지 이유는 카메라 플래시 등이 연주자의 연주를 방해하거나 무용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관객들도 사진 촬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콘서트장에서 사진 촬영을 금하는 것은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물론 초상권 보호나 순조로운 공연 진행에 필요한 조치라는 것은 이해한다. 또한 콘서트를 진행하는 가수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법적으로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다. 소위 '얼굴로 먹고 산다'고 할 만큼 연예인들에게 있어 초상권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 보면 아쉽다. 스타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팬들이 스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다. 인터넷을 통해서 가수들의 사진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자신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찍는 사진에 비할 수 없지 않나.
팬들이 찍은 사진 중 얼마나 많은 사진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을까. 스타의 사진을 악용하는 일부 팬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단지 추억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콘서트 표를 샀다는 것은 콘서트장에서 그 가수를 직접 보고 노래를 듣고 또한 그의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구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불법 음악 다운로드 방지와 초상권 지키기도 중요하지만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신경써야 한다.
물론 콘서트장의 사진 촬영을 무작정 허용하자는 말은 아니다. '플래시 사용 금지', '앞으로 나가 사진 찍기 금지', '일어나서 사진 찍기 금지' 등 자신의 사진 촬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공연 관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진 촬영을 하는 것보다 가수들의 음악에 흠뻑 취하고 싶은 팬들도 있기 때문이다.
콘서트장까지 찾아온 팬은 가수에 대해 애정이 있는 이른바 '골수팬'이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 보다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