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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판 중대제안을 했다?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한국전의 종료를 선언하고 경제 협력과 문화·교육 등 분야에서의 유대를 강화할 것"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던 긴장 분위기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선언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 정권을 붕괴할 의사가 없다고 여러번 공언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말로만 아닌 구체적인 정책과 행동으로 이를 보여달라"고 주장해왔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같은 북한의 주장에 대한 화답으로 볼 수 있다. 즉 핵폐기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북한에 대한 적대 의사가 없다는 것을 '한국 전쟁 종료 선언'으로 말한 것이다. 전쟁 상태가 종식된다면 두 나라의 적대 관계는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실장은 "한국 전쟁 종전 선언은 북미 양국이 관계 정상화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고, 이는 북한을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라며 "이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설정했던 부시 행정부의 기존 정책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백 실장은 "미국의 발언이 북한을 6자 회담에 복귀시키려는 말 수준에서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실천 의지가 있는 것인지 북한이 지켜볼 것"이라며 "만약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있다면 북한이 화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은 결국 과거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때 이뤄졌던 남·북·미·중의 4자회담 형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0년 북미 수교 직전과 비슷한 발언"

2005년 9월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2005년 9월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지난 2000년 10월 조·미 공동커뮤티케에 한국전쟁을 종식시킨다는 표현이 처음 나왔다"며 "이번 미국의 발언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보다 더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 10월 12일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온 조·미 공동커뮤티케에는 "쌍방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당시 조·미 공동커뮤티케는 사실상 북미 수교를 앞두고 이뤄진 성명으로 북미관계가 가장 접근했을 때 나온 것이었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언급과 함께 "직접 당사자들은 한반도에서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적절한 별도의 포럼을 통해서 평화협정 체제를 협상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번 미 백악관의 언급이 9·19 공동성명과 내용상 다를 것이 없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9·19 공동성명의 초점은 대북 안전 보장에 관한 6자간의 약속이었지만 이번 발언은 북미 관계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는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부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북한은 다자회담을 통한 안전보장보다는 적대 관계의 핵심인 미국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안전 보장을 훨씬 더 선호해왔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더 이상의 내용을 내놓기는 힘들다. 이제 북한이 협상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태도 변화의 핵심은 금융제재 문제"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기획실장은 이번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의 언급을 '미국판 중대제안'이라고 평가했다.

조 실장은 "북한은 전쟁상태가 기술적으로 종료되지 않았기 때무에 미국의 적대 정책이 게속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며 "미국의 북핵 폐기시 전쟁 종료 선언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면 북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물론 분위기는 바뀌겠지만 구체적으로 북미 관계가 얼마나 진전될지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조 실장 역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는 김영삼 정부 때의 4자 회담 형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에 관한 기본 협정을 맺고 그 부속문서로 북·미 평화협정, 남북 평화협정 등이 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평화협정은 이미 지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갈음하거나 약간만 수정하면 된다는 시각이 많다.

북·미의 경우 미 의회가 정치적으로 북·미 전쟁 종결을 뒷받침한다면 행정부가 선언하는 것으로 법적 효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이 핵을 폐기했을 때 평화체제 논의 문제는 9·19 공동합의서에 이미 표현된 것"이라며 "이미 합의했던 것을 반복했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의 징표는 금융제재에 대한 해법으로 봐야 한다"며 "미국이 당면한 문제에 얼마나 진지한지를 보고 미국의 협상 의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미국이 평화체제라는 말을 전쟁 종식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 직접 평화체제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은 배경을 해석하기 어렵다"며 "일부 언론에서 미국이 실질적 해결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분석하는데 이번 미국의 발언이 정책 변화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더구나 9·19 공동성명을 보면 북핵을 폐기하면 평화체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9·19 공동성명의 이행합의가 논의되면 별도의 포럼을 통해서 평화체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핵 폐기 대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응조치였다, 일종의 동시행동의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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