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의도는 '북한의 속국화'에 있다. 그렇게 되면 분단은 고착화되고 통일은 요원해진다.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고구려역사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도 엄연한 고구려 유물이 존재한다. 1500여점에 이르는 아차산 자락의 유물과 보루를 복원하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많은 단체장들이 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고민하고 있는 이 시기, 인구 19만 명의 작은 도시 경기도 구리시에선 대형 프로젝트로 '고구려'와 '조선왕릉'을 선택했다. 이처럼 '역사복원'을 구리시의 청사진으로 제시한 이는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유일의 '여당후보'로 당선된 박영순 구리시장이다.
박 시장은 "고구려의 700년과 조선왕조의 500년 역사를 올바로 지켜야 한다"며 "구리시민들은 역사의 보물창고 속에 살고 있다. 북으로는 동구릉을 가꿔 조선왕조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특구를, 남으로는 아차산의 고구려 유물을 복원해 고구려사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주제공원을 만들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박 시장의 이러한 야심찬 계획은 그가 마지막 관선시장으로 있었던 지난 94년, 구리문화원에 아차산 자료조사를 승인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민선 1기와 3기에서 낙선하며 정책지속성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절치부심한 박 시장은 4년간의 공백을 딛고 민선 4기로 돌아온 올해 곧바로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놓았다. 지난 16일 오전 11시와 1시 잇달아 열린 '2006 고구려 삼족오 대축제'와 '제1회 구리건원 학술대회-조선왕릉 동구릉의 역사와 문화'가 그것.
고구려 행사장과 조선왕릉 학술대회장으로 번갈아 움직이며 분주한 박 시장을 16일 오후 2시 40분 시장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시장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삼족오 대축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한 역사 전쟁의 하나
- '고구려의 기상, 대한민국 구리시'라는 표어가 인상적이다. 고구려에 주목한 이유는.
"동북공정을 중국이 작심하고 진행하고 있는 이상, 역사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승패는 일시에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국제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 인식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열의가 핵심이다.
구리시가 끼고 있는 아차산에서 1500여 점의 고구려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남한 내 고구려 관련 최대 유적지이다. 또한 구리시에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등 고구려 영웅들의 역사기록이 존재한다. 한편 신라는 경주, 백제는 공주와 부여로 대변된다. 구리가 자랑스러운 705년 고구려역사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유물과 기록이 있다고는 하지만 구리시 자체로 고구려 사업을 하기는 버겁지 않을까.
"고구려 역사 복원은 지난 2000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02년에는 고구려 역사주제공원의 조감도를 완성하고 외자 유치도 확보했었다. 하지만 민선 3기에서 낙선하며 그 계획이 무산됐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사업의 핵심은 예산과 토지 문제다. 역사공원 부지가 그린벨트로 묶여 건립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고구려역사복원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 예산이 4000억원이라고 들었다. 시 1년 예산보다도 많은 국책사업 규모 아닌가.
"대부분을 민간자원에서 유치할 생각이다.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인 2002년에 이미 1300억원 유치를 확보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고구려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윤호중 의원과 김기헌 의원이 발의한 고구려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민자 유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 고구려 역사주제공원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아차산은 중국 지안에 있는 고구려 환도산성의 지세와 유사하다. 아천동 일대 10만평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해 1500여 점의 유물을 복원하는 것을 비롯해, 만주와 평양에 있는 고구려유물도 재현할 생각이다. 역사교육을 위한 문화공간, 광개토대왕·장수왕광장, 가상현실 놀이공간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간다."
- 역사주제공원의 사업성은 자신 하나.
"민선 3기 때 착수했으면 지금쯤 완성돼 고구려열풍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방송하고 있는 사극들을 봐라. 주몽은 전남 나주, 대조영은 강원도 속초, 연개소문은 충북 단양에서 촬영하는데 그 곳이 고구려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얼마 전 제주에서 촬영하고 있는 태왕사신기 팀이 구리시에 촬영지 협조를 요청했다. 그래서 행정자치부와 경기도를 쫓아다니며 20억원을 마련해 1500평 부지를 준비했다. 촬영지가 완성되면 대장간마을로 조성해 고구려의 철기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 동구릉 학술대회 축사를 들으니 조선왕릉에도 상당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동구릉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개국의 시조인 태조, 임란을 겪긴 했지만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선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영조가 있는 등 조선의 처음과 끝을 경영한 왕들이 모두 자리한다.
이처럼 왕릉에는 역사의 교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지 소풍이나 가는 곳으로 여겨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것이 지역발전과 접목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사업은 없다."
-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조선왕릉 사업도 국책사업에 가까워 보인다.
"경복궁, 화성 등 궁과 성들에는 조선왕조의 역사가 담겨 있지만 동구릉처럼 500년 조선통사를 다루는 곳은 없다. 구리시의 고구려·조선과 한강 건너에 있는 암사동의 선사시대, 풍납동의 삼한시대(백제)를 포함하면 고려를 제외한 역사주제관광도시를 연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관광객이 한 해 약 600만명에 이르는데 그 중 절반이 서울의 인사동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인천 영종도에서 유람선을 태워 풍납동과 암사동을 거쳐 구리시까지 한 번에 데려 올 수 있다."
"정부가 앞장 못서면 국민이라도 나서야"
박 시장은 인터뷰 내내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고구려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거침없는 답변에 묻어났다. 박 시장은 4년 만에 구리시장으로 다시 당선된 것에 대해 "고구려 사업을 마무리하라는 숙명인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한편 박 시장은 서울경기 지역의 56개 자치단체 중 유일한 열린우리당 소속 단체장이다. 그가 밝힌 고구려역사공원과 조선왕릉의 관광도시 조성을 위해선 경기도와 서울 광진구, 송파구, 강동구 등과의 협의는 필수적일 터.
- 주변 자치단체장들과 소속 정당이 다름으로 인해 어려움은 없나.
"10년 넘게 준비해 온 고구려역사공원 건립문제를 느닷없이 서울 광진구가 진행하려고 해서 반대성명을 내기도 했다. (시장직을 비웠던) 지난 4년간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역사문제를 바라보는 데는 너와 내가 없다. 이제는 광진구를 포함해 주변 자치단체를 보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 고구려와 조선왕릉이라는 힘겨운 사업을 추진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2002년 북한이 고구려고분을 유네스코에 등록하려 했을 때 중국이 만류하더니 막바로 집안시의 유물을 복원해 북한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이런 점 때문인지 현재 국제적 시각은, 고구려역사가 북한과 중국의 역사로만 인식되고 있다.
외교문제 등 여러 이유로 정부가 나서지 못한다면 자치단체에서라도 나서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품고 있는 구리시가 앞장서고 있는 이유인데, 이는 곧 자치단체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구려역사복원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업이다. 조선왕릉 복원사업도 역사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이다."
고구려 삼족오 축제 행사 때문에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박 시장은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무척 많았던 그는 다시 한 번 우리역사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며 20년 전 500억원을 모금해 독립기념관을 지은 바 있다. 이번에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할 때이다. 정부가 나서기 힘들다면 국민적 열의를 담아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한 범국민모금운동을 벌이자. 그래야 국제 여론이 움직이고 중국이 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구리넷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