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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랭겔 미 민주당 하원의원
찰스 랭겔 미 민주당 하원의원 ⓒ 블룸버그=연합뉴스
특히 찰스 랭겔 의원은 19일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정치인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억제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징병제"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동료 민주당 의원들까지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랭겔 의원은 "만약 우리가 징병제를 실시하여 의원들과 행정부 관리들의 자녀가 위험한 장소에 가게 된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대통령과 행정부는 결코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쟁을 지지하면서 징병제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같은 짓을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랭겔 의원은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이란과 북한의 도전에 대응하고, 이라크에 더욱 많은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요청에도 응할 수 없다"면서 징병제 안에 대해 배수의 진을 쳤다.

한국전 참전 군인이기도 한 랭겔 의원은 "모병제로는 전쟁의 짐을 소수계나 저소득층 가족의 젊은이들이 떠 맡게 된다"며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해 온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날 랭겔 의원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가난한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는 랭겔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표하면서도 "미국은 현재 병력이 태부족하다, 우리가 현재의 모병제로 안된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랭겔 의원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랭겔 의원은 지난 2003년 이라크 침공 직전에 18세에서 26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 안을 내 놓은 바 있으나 402대 2로 부결되었다. 올해에도 그는 18세에서 42세에 이르는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징병제 안을 내놓았으나 역시 기각당했다.

여야 한목소리 "징병제는 반대"

랭겔 의원의 징병제 주장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고 나섰다. 랭겔 의원의 징병제 주장의 진의를 떠나 월남전 이후로 징병제에 대한 미국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라크전 문제로 민감한 시점에 자칫 공화당의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 던캔 헌터 의원은 21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은 현재 모병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면서 "군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지원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치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이같은 역공을 미리 의식한 듯 하원의장 내정자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은 20일 AP통신에 "그것(랭겔의 주장)은 단지 징병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희생의 짐을 나누어 지자는 것이다"면서 "랭겔 의원의 주장은 사회 정의를 위한 강한 목소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일단 방호막을 펼쳤다.

그러나 펠로시 의원은 징병제 부활안을 내년 1월 의회의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하원 민주당 대표로 내정된 스테니 호이어 의원도 "현재 (내년) 의회의 의제들을 논의하고 있으나 그것(징병제 부활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징병제 반대 의사를 에둘러 드러냈다.

새 의회에서 상원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칼 레빈 민주당 상원의원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것(징병제)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랭겔 민주당 의원의 징병제 주장을 일축했다.

랭겔 의원의 발언으로 미국 사회에서 징병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동두천 미2사단장 이취임식 중 사열에 참가한 미군 병사들.
랭겔 의원의 발언으로 미국 사회에서 징병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동두천 미2사단장 이취임식 중 사열에 참가한 미군 병사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분명한 것은 의회나 정계 등은 물론 일반 여론으로 보아 랭겔 의원의 징병제 주장은 그리 큰 호응을 받을 수 없고, 의회에서 정식 의제로 다루어질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남북전쟁과 1,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고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징병제를 실시했다. 특히 월남전 말기 반전 무드가 전국을 휩쓸면서 징병제를 피하려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붙잡으로는 행정부 사이에 일대 격돌이 벌어진 바 있다.

그동안 여러차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들의 70%는 징병제의 부활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행정부 관리들도 징병제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달 사임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도 작년 6월 의회에서 징병제가 부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랭겔의 주장에 박수보내는 '숨겨진 여론'

결국 랭겔 의원의 징병제 주장은 명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사회에서 팽창일로를 거듭해온 반전 분위기에다, 이라크 미군 감축 또는 조기 철군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를 형성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랭갤 의원이 '정치인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억제하는 유일한 길은 징병제를 실시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가난한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는 주장은 징병제 찬성 여부와 관계 없이 일반 미국민들의 소리 없는 찬성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004년 여름 미국 극장가에 센세이션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의원들을 향하여 입대 원서를 들이밀고 "당신의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라"고 추근대자 손사래를 치며 내빼는 장면에 청중들이 박수를 보냈던 것도 이같은 미국민의 여론을 보여준 것이었다.

가깝게는 지난 7일 중간선거를 이틀 앞두고 존 케리 상원의원이 '똑똑하지 않고 공부 못하면 이라크에나 가게 된다'는 말로 큰 곤욕을 치르기는 했으나, 반전 웹사이트는 물론 유력지의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 등에 '케리가 사실상 할 말을 했다'는 글들이 상당수 떠다녔던 것도 '숨겨져 있는 여론'을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제시 잭슨 목사
제시 잭슨 목사 ⓒ 블룸버그=연합뉴스
특히 잭슨 목사가 21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 뱉은 자조섞인 푸념은 이같은 여론의 일단을 엿보게 하고 있다.

"랭겔은 올바른 논제를 부각시켰다. 특권층은 국가안보에 대한 부담로부터 이득을 취하고, 위험 부담 없는 경제 활동을 통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다른 계층은 갖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소액의 소득만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치솟고 있는 등록금은 가난한 젊은이들을 대학 문전에도 이르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제조업 노동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이같은 현실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군 입대로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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