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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들 듣고 있던 신부 박훈례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축가들 듣고 있던 신부 박훈례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 박지훈

23일 청량리역 광장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 주인공은 20년 동안 알콜중독자·노숙자 딱지를 떼고 신학의 길을 걷고 있는 새신랑 유용일씨(46·장신대)와 그의 신부 박훈례씨(46·장신대).

유씨의 노숙생활은 20대 초반 술과 함께 시작됐다. "20살 때부터 술에 미쳐 살았다. 알콜중독자 노숙자. 젊은 시절 제 삶을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20년 동안 하늘과 땅은 그에게 이불이고 베개였다. 이런 유씨에게 1999년 8월 청량리역 광장에서 김원일 목사(신생교회)와의 만남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신생교회는 청량리역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로 김 목사가 1999년 전도사 시절 동기생 두 명과 광장 한 구석에서 노숙자 5명과 함께 시작한 예배에서 시작됐다. 김 목사는 당시 "노숙인들에게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청했지만 싸늘한 눈길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점심을 사기로 약속하고 예배를 진행했지만 노숙인들은 예배 도중에도 술을 마시는 등 일반 예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 목사의 첫 예배는 그렇게 기록됐다. 신생교회는 현재 노숙인 500여 명과 함께 하고 있다. 유씨는 김 목사의 도움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3개월만에 알콜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평생 알콜중독자 딱지를 떼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그는 이 일이 있은 후 노숙자들을 위해 헌신키로 마음먹고 올해 초 장신대에 편입했다. 신학도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지만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알콜 중독에 의한 치매 증상이 심각했던 것. 유씨는 "기억력이 제로 상태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결국 그는 성경 필사에 도전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2번 필사했다. "한 번 필사하는 기간이 1년 3개월 걸렸으니 총 2년 6개월 동안 필사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저를 꽉 붙들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알콜 노숙자→ 신학대학 편입→ 신부 만나 결혼 골인

20년 넘게 노숙자, 알콜중독자의 삶을 살아온 유용일씨가 신학생이 돼 23일 청량리 역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앞으로 노숙인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노숙자, 알콜중독자의 삶을 살아온 유용일씨가 신학생이 돼 23일 청량리 역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앞으로 노숙인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박지훈

장신대 편입에 성공한 유씨는 신부 박훈례씨를 그곳에서 만났다. 박씨는 같은 반 동급생이었다.

유씨는 박씨가 한눈에 들어왔지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탓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 처지를 너무 잘 알기에 감히 접근 할 수 없었다." 유씨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1학기가 지나갔다.

유씨 동급생들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유씨 마음을 알아챈 주변 동급생들은 유씨와 박씨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고,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나님께서 제 처지를 알고 이렇게 역사해 주신 것 같다." 유씨는 그 때를 회상하며 웃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기분에 들떴지만 이내 한숨을 짓게 됐다. 박씨 부모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던 것. 여주에 있는 박씨 부모님을 찾아갈 때 그는 차 안에서 기도에 매달렸다. "내놓을 게 하나도 없는 놈이 어떻게 하겠는가. 그저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 이뤄졌다. 박씨 부모님은 한마디 반대 없이 결혼을 승낙했다.

이날 결혼식을 지켜본 이들 가운데 가장 감회가 남달랐던 이는 바로 유씨 어머니 이귀분 여사(75). 20년 동안 아들의 노숙자 생활을 지켜본 어머니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20년 동안 아들을 위해 기도만 하고 살았다.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 그것만이 제 평생 기도 제목이었다"며 "온갖 감회가 교차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씨 어머니 유정자 여사(63)는 "과거는 과거 일 뿐"이라며 "이제는 이렇게 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유 여사는 "둘이 행복하게 잘 산다면 더 이상 소원은 없다"고 말했다.

하객의 절반은 노숙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김원일 목사는 "맹물이 포도주로 바뀐 기적의 현장"이라며 "부모와 형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쳤던 맹물 같던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 노숙인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감회를 나타냈다.

결혼 소감을 묻는 질문에 유씨는 "웃는 얼굴로 대신 표현하겠다"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인들에게 소망과 도전을 주고 싶다"며 "앞으로 이들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부 박씨는 "앞으로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며 노숙인들을 섬기겠다"며 흐르는 눈물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그의 화려(?)했던 경력 탓에 500여 명이 넘는 하객 중 절반 이상이 노숙자들이었다. 노숙인 감점석씨(가명·45)는 "역사에 남을 일"이라며 "둘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민순씨(가명·76)도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며 두 사람의 앞길을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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