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체 : 24일 오후 3시 30분]
"놈들이 날 해쳤어.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그럴 수는 없을 거야."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극물에 중독돼 사망한 전직 구소련 스파이가 사망을 몇 시간 남겨놓고 한 말이다.
AP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영국에서 망명중인 KGB 간부 출신 알렉산더 리트비넨코(43)가 23일 밤(현지시간) 런던의 유니버시티 컬리지 병원에서 끝내 사망했다.
병원 측은 그의 사망 직후 "우리는 그를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며 "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트비넨코가 입원한 이후 일각에선 그가 과거 정보기관들이 변절한 스파이를 제거하는데 쓰여왔던 '탈륨'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해왔으나, 병원 측 검사에서는 탈륨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병원측은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방사성 물질 흡입설도 부인했다.
리트비넨코는 지난 1일 런던의 한 호텔에서 러시아인 2명을 만나 차를 마신 뒤, 피카딜리 광장의 한 일식집에서 이탈리아인 등 2명을 만나 얼마전 암살 당한 러시아 여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집에 돌아온 뒤 쓰러져 입원했다.
리트비넨코는 이날 제보자들로부터 여기자 살해의 배후로 여겨지는 러시아연방정보국(FSB) 간부 4명에 관한 문서를 건네받았다.
KGB 음모 폭로한뒤 망명... 러 정부에 미운털
리트비넨코는 지난 1998년 KGB가 푸틴 대통령의 정적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폭로한 뒤 2000년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최근에는 폴리트코프스카야 살해의 배후로 크레믈린을 지목해 러시아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
리트비넨코의 지인들은 러시아 정보당국의 개입을 확신하고 있다.
KGB 런던 분실장을 지낸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는 "이 사건은 오직 러시아 정보당국만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더 타임스>가 보도했으며, 리트비넨코의 친구인 알렉스 골드파브는 리트비넨코가 의식을 잃기 전에 "러시아 정부와 여기자 살해사건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난 이후에 독극물에 중독됐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크레믈린은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현재까지 "허무맹랑한 얘기"로 일축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한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 "물론 이것은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크레믈린이 개입됐다는 주장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푸틴 대통령이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더 타임스>는 리트비넨코가 죽기 몇 시간 전에 방문한 그의 친구 안드레이 네크라소프에게 "그 놈들은 나를 해쳤지만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 꼭 살아남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등 크레믈린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내가 죽는 것은 내가 하는 일들이 옳았다는 증거"
리트비넨코는 간간이 농담까지 하면서 "그가 독살 당하는 것은 그가 크레믈린에 대해 하는 일들이 옳았으며 진실이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고 그의 친구 네크라소프는 전했다.
리트비넨코는 그의 책
라는 제목의 책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이 1999년 연쇄 아파트 폭파사건을 일으켜 푸틴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네트라소프는 또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리트비넨코가 여기자 살해사건 직후 나에게 '위험하니 러시아에는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했었는데, 정작 그가 다음 희생자가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