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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뉴델리 인도대통령궁 후진타오중국국가주석환영식장에서 만모한 싱 인도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후 주석
21일 뉴델리 인도대통령궁 후진타오중국국가주석환영식장에서 만모한 싱 인도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후 주석 ⓒ 로이터=연합뉴스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은 냉전시대에 미·소관계가 국제질서의 핵심 변수였듯 21세기에는 미·중관계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의 전략적 가치가 주목받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가 미·중관계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균형자'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도 모델'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중관계와 이러한 미·중관계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한국에게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맥락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 역시 중국 봉쇄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와 미·일동맹에 대한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충돌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삼기 위한 핵심적인 파트너로 인도를 삼고, 이 나라와의 전면적인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봉쇄 정책에 대항하고 장기적으로 다극 체제를 만들기 위해 인도에게 계속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관계 개선 시도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인도의 주가를 높여주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인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21세기 들어 인도가 국제 세력균형체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swing state)로 부상하고 있는 데에는, 민주주의의 신장 및 경제성장과 함께 새로운 외교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냉전 시대에 인도는 정치적으로는 서구 국가와 친화성이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국가 사회주의 체제의 속성을 보였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친소련 정책의 틀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냉전의 종말은 인도에게 경제자유화와 개방을 추구하는 한편, 대외정책의 자율성과 융통성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이를 반영하듯 인도는 1990년 이후 연평균 7%를 넘나드는 경제성장을 달성해오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부상에는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정책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냉전 종식이라는 호기를 능동적인 대외정책 수행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선 파키스탄과 중국 등 영토 분쟁을 겪어왔던 나라들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다. 남아시아의 경쟁자이자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영토 분쟁을 벌였던 파키스탄과는 신뢰 구축 조치에 기반을 둔 관계 개선을 추진했고, 1962년 영토 문제로 전쟁까지 했던 중국과도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경선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카슈미르 분쟁이 격화되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장에 성공하면서 제기되었던 핵전쟁의 우려를 크게 완화시켰고, 2005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뉴델리 방문 때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는데 기초를 닦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인도의 외교안보 전문가인 라자 모한은 "인도는 영토 문제와 관련해 법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용적인 해결을 모색했다"며, 이는 영토 분쟁으로 소진되어왔던 인도의 국력을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인도의 신외교의 또 하나의 축은 강대국들과의 전방위적인 관계 개선의 추구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범위'에 갇혀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지 못했고, 중국과는 영토 분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해체와 함께 인도는 미국, 영국, 일본 등 G7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한편, 21세기 들어서는 중국과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1998년 인도의 핵실험과 카슈미르를 둘러싼 파키스탄과의 분쟁에 대해 인도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물러나고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자, 인도는 미국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양국은 이슬람 과격 세력 저지 및 중국의 팽창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해왔다. 또한 인도가 미사일방어체제(MD), 기후변화 협약, 이라크 침공 등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정책을 지지·협력한 것도 주효하게 작용했다.

"인도는 아시아의 프랑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 인도를 방문해,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어, 전략적 파트너십의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2일 인도를 방문해,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어, 전략적 파트너십의 증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 백악관 홈페이지
그렇다고 인도가 동아시아의 일본이나 유럽의 영국처럼 미국과 '완전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펜실배니아대 인도연구소 부소장인 알리사 아이레스는 "인도는 꾸준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동기가 강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으며, 미국과 파키스탄에 대한 정책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레스는 예일대에서 발행하는 'YaleGlobal'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바라보면서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의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고 있으나, 인도는 중국과도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미국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아이레스는 미국이 인도를 영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와 같은 동맹국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라크 침공 및 이란 핵문제에 대한 대응책에서 나타난 것처럼 프랑스는 미국의 핵심적인 동맹국이면서도 때에 따라 미국의 대외정책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인도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겠지만, 이것이 곧 친미 노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에서 얻을 교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는 미·중간의 패권 경쟁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미·중간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이는 미·중관계의 향방과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주시하면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도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인도는 미·중 양국을 상대로 한 불원불근(不遠不近) 외교를 통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도 모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조속히 한반도 냉전구조를 종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냉전 종식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한국에게 이보다 더 절박한 과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역사·영토 문제에 대해 '우호적인 해법'을 모색한 인도의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이들 문제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및 동북아 공동체 구성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지혜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는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전방위적인 외교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미국의 패권전략의 하위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기초도 닦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을 '리틀 아메리카'로 만들뿐이다.

물론 이들 세 가지 과제는 고도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 어느 것 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머지 목표도 달성하기 힘든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전략적 사고와 이를 뒷받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외교력의 강화 그리고 시민사회의 국제 네트워크 구축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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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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