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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밤 10시경 3층 대합실에서 승객이 두고 간 가방을 찾아 유실물센터에 맡긴 이수옥씨는 참 한국인이다. 가방을 고스란히 돌려준 이수옥씨는 서류와 돈만이 아닌 참되고 뜨거운 한국인의 고운 마음을 간직하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돌려주었기에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씨의 선행을 알고 난 후 네티즌들이 보내오는 반응 또한 너무나 감격적이다. '와 세상은 아직 따뜻하구나' '살만한 세상이구나' 등등….

만약 이수옥씨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가방 주인과 가족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실제로 다음날에야 회사 돈이 든 가방을 분실한 사실을 깨달은 곽씨는 "집을 팔아 1억 원을 메우고 사표도 낼 생각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가방을 놓고 떠난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곽씨와 그 가족이 당할 고통은 얼마나 극심하였을까?

크고 작은 분실사건은 현대를 사는 바쁜 우리에게 언제 어디에서나 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지난 10월 넷째 주에도 내가 아는 분 셋이 여권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불행히도 그 중 두 사람은 분실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아직도 감수하고 있다.

이틀을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호주청년 '다니엘'

불행히도 이씨와 같은 아름다운 손길을 만나지 못한 이국의 청년이 있다. 다니엘 헤니처럼 미남인 다니엘 쿠리라는 호주 시드니에서 온 젊은이다. 다니엘이 지갑을 분실한 것은 부산역이다. 여권이 든 지갑을 지난 10월 25일 송두리째 분실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만난 것은 사건 이틀 후인 27일 금요일 오후 부산역을 출발하여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이다. 비좁고 복잡한 서울역 화장실을 나는 일부러 피해 다녔다. 그러나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나는 얼굴을 훔치고 있는 앳된 이국인을 만난 것이다. 내가 만난 다니엘은 대학 졸업 후 3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을 가진 24세이지만 소년 같은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드니란 막힌 도시에서 나와 좀 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영어를 가르쳤고, 인천공항을 거쳐 런던으로 떠나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길이다. 서울에서 며칠을 보낸 후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타려고 티켓과 여권을 꺼내려던 순간에야 여권을 포함한 지갑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바로 부산역으로 향해 분실한 장소를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고 한다.

부산역 관광안내소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의 지갑을 돌려줄 것을 기대하며 이틀 밤을 꼬박 피씨방과 부산역을 오가며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다고 한다. 호주대사관에 연락을 취하니 서울 대사관을 방문하여야 한다고 했다. 허탈과 좌절을 안고 그가 겨우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티켓은 가장 느린 무궁화호였다고 한다. 그가 서울역에 도착한 것이 지갑을 분실한 이틀만인 금요일 오후 6시경이니까 이미 대사관 문은 굳게 잠긴 이후였다.

다니엘에게서 가장 급한 일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저녁을 함께 할 수 없었던 나는 우리 민족의 백산차를 발굴한 차인 남봉우님께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힘든 일은 마다하지 않고 언제든 도와주는 그에게 다니엘을 만나서 일산의 숙소로 데려다 주도록 부탁을 했다.

다니엘은 그 동안에 쌓인 피로와 긴장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된 듯 12시간이 넘도록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인 토요일 점심시간이 될 무렵에야 일어났다. 일요일 또한 남봉우님이 특별한 일정을 마련해 주었다. 다니엘을 봉천동에 위치한 주사랑교회로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선교 위주의 교회인 관계로 호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또래의 교인들이 많았고 극진한 친절과 배려로 교인들 모두 다니엘을 환영하여 주었다.

일본이라는 나라 옆에 대한민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다는 다니엘. 그는 이방인인 목사님과 교인들의 환대를 너무나 큰사랑과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구 교회의 외형과 예배형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국인의 따스함과 친절을 그대로 간직한 교회가 아닐 수 없었다. 나 또한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흐뭇한 시간들이었다. 이러한 따뜻함과 친절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특이한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다니엘은 월요일에 호주 대사관을 방문하여 24시간만인 화요일에는 임시여권을 발급 받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한국에 계속 체류하고 싶다는 미련을 갖고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수옥씨의 선행과 다니엘의 상처를 생각하면서 여행객이 분실로 인한 고통을 당하지 않는 나라를 꿈꾸어 본다. 그런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관광대국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정무형 기자는 영산대학교 컨벤션이벤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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