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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멍든 사진
딸아이의 멍든 사진 ⓒ 김대갑
못 말리는 술버릇... 취하면 필름이 끊긴다

어쨌든, 나는 회사로 출근하였고 아내는 아이를 안고 돌 사진을 찍으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오랜 동안 못 만나던 고교 동창생 놈들이 연타로 전화를 걸어와서 잘 됐다 싶어 술집으로 냉큼 달려가게 되었다. 아내에게는 회사 회식이라고 둘러대면서 말이다. 아, 그날 따라 먹은 술이 어찌 그리도 맛있던지.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난 동창생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주고받은 술잔이 문제였다. 너무 많이 마시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집에 돌아 갈 때 쯤 나는 완전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아내와의 약속은 일주일도 못 돼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야말로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갔다. 물론 아무런 기억도 없이 말이다. 다음날, 난 심한 갈증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아내가 샐쭉한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내 곁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져 가만히 아내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혹시 내가 어젯밤에 아내에게 씻지 못할 잘못이라도 저질렀단 말인가.

"뭐야, 왜 그래? 무, 무슨 일이 생겼어?"

아내는 나의 이 말에 얼굴빛을 붉게 물들이더니 포효하듯이 외쳤다.

"당신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어제 당신이 무슨 짓 했는지 몰라?"
"내가 어제 무슨 짓을 했는데? 내가 무슨 큰 실수라도 했어?"
"했지, 정말 큰 실수했지."
"뭔데,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데? 아, 빨리 이야기 좀 해봐."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는 내 눈 앞에 딸아이의 얼굴을 쑥 내밀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이 심하게 부어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 우리 딸아. 애 눈이 왜 이래? 누가 이랬어? 누가 이리 만들었어?"
"아, 당신이 어젯밤에 그리 만들었지, 누가 그랬어?"
"뭐, 내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내가 왜?"
"어이구, 내가 못살아. 이 인간아, 어제 당신이 잠자는 애를 발로 밟았잖아!"
"뭐야, 내가 발로 밟았다고?"

아내는 다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서는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말을 못한 채 입을 헤벌리며 멍청하게 천정을 쳐다보아야만 했다. 이럴 수가. 내가 딸의 얼굴을 밟아서 눈에 멍이 들게 하다니. 아아, 나는 참으로 못난 아빠로구나.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딸의 얼굴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을까?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던지 나를 달래듯이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눈두덩만 조금 부어서 눈은 상관없대. 당신은 전혀 모르지. 내가 어제 언니랑 심야 응급실로 간 것도. 애 눈이 잘못 되었으면 어쩌나 하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아?"

그저 놀란 표정으로 아내의 말을 듣던 나는 점차 안도하는 표정으로 돌아와서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눈은 상관없다고? 저… 정말 미안해. 내가 애에게 엄청난 실수를 했구나. 그저 내가 죽일 놈이다."

아내의 말에 다소 위안을 얻은 나는 비감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곤 옷을 챙겨 입고는 급히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하게 이런 말을 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우리 딸을 두고 맹세하마. 두 번 다시 술을 먹지 않겠어."

술 취해서 아이 얼굴을 밟았다고?

그 후, 나는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술 먹는 횟수를 현저하게 줄였다. 또한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먹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진 않았지만 심하게 술이 취한 채로 집에 들어간 날이 있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조금 발동해서 나는 일부러 인사불성인 양 거짓부렁을 하게 되었다.

일부러 현관문을 차기도 했고, 아내를 큰 소리로 부르기도 했다. 아내는 찡그린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면서 나의 인사불성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짐짓 모른 척, 계속해서 인사불성을 흉내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착한 내 아내는 그런 나를 살살 달래며 안방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저 잠이나 재우는 게 제일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아채곤 짐짓 끌려가는 양 안방으로 슬쩍 들어가게 되었다.

아내가 양말을 벗기고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는 게 느껴졌다. 아, 오랜만에 받아보는 서비스에 기분이 조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살포시 잠이 들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방문을 나가면서 날린 멘트 하나가 나의 잠을 확 깨우고야 말았다.

"이 인간아, 딸내미 핑계대고 술 좀 끊게 하려고 했더니만. 소용이 없네, 소용이. 그때 사진 찍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눈에 멍든 것을 잘만 써먹었는데, 겨우 한 달도 안 돼 그 약속을 깨고 마냐. 에구 내 팔자야."

아직도 아내는 내가 속은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내의 순연한 의도를 아는 나는 결코 아내에게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나와 아내만의 은밀하면서도 즐거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딸아이의 멍든 얼굴이 왜 이리도 귀엽지.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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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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