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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엄마가 자녀들의 정보(?)를 캐는 보물창고다(사진은 이 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엄마가 자녀들의 정보(?)를 캐는 보물창고다(사진은 이 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사이월드 화면 캡처

얼마 전 모임에서다. 이야기 끝에 자식들을 기숙사나 원룸에 세간 낸 엄마들이 여럿 있어, 눈에서 멀어진 자식들 원격조정하기가 화두에 올랐다.

"가장 좋은 방법은요. 아이들 싸이에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 가보면 녀석들 근황을 한 두룸에 뚜루루 꿸 수 있다니까. 여자친구는 누군지, 고민은 무엇인지, 교우관계는 어떤지…."
"맞아, 맞아…. 우리도 딸아이 싸이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정보를 입수하지."

다른 엄마가 맞장구치는데 이건 정보과 형사가 따로 없었다. 아날로그이다 못해 원시인간 쪽에 더 가까운 나. 눈알만 멀뚱멀뚱 굴리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얘들 싸이를 어떻게 찾아내? 난 아들놈한테 싸이 홈피 좀 알려달라고 했다고 단칼에 거절당했는데…."
"아, 그거는 싸이에 가서 아이들 주민등록번호 치면 금방 나와…."

집에 돌아와 즉각 싸이를 검색해 주민번호를 입력했다. 그런데 눈알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찾아봐도 어떤 게 아들놈 것인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싸이 들락거리는 엄마들, 정보과 형사가 따로 없네

칼을 뺐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딸에게 SOS를 날렸다. 깐깐한 아들놈과 달리 딸은 '대충 건달'인 나를 닮아 삶은 호박에 이빨 들어갈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 가장 간단하게 찾는 방법 알려줄게. 우리가 만든 싸이카페 있지? 거기 들어가 인장이 이름에 커서를 대면 바로 홈피로 가게 돼 있어."

얏호! 그 때부터 아들 딸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홈피 사냥을 시작했다. 전에 몰랐던 아이들의 이모저모, 알고 나니 보통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우선 아들놈이 관심대상이었다. 입대하기 전 찢어졌던 여자친구와 재결합을 했다는 정보를 딸아이가 흘려줬기 때문이었다.

여자친구와의 결별이 꽤 힘들었던지 휴학기간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나가지 않던 아들놈. 급기야는 술기운에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져 콧등을 대여섯 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은 놈이었으니(새벽 응급실에서 하필 바느질 서툰 의사가 엉망으로 꿰매 성형수술을 해야 할 판이다)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참, 요즘 아이들은 단어 몇 개로 천마디를 대변하는 재주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우리처럼 구구절절 구질구질,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 뽑아내는 신세타령이 없으니 찢어져도 아주 상큼하고 개운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 열불나…. 나보고 어쩌라고."
"맘은 백번 천번 아파도 상관없다. 주사 맞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무심하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놈, 내 아들 맞구먼.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에 쓴 글인 것 같았다.

아들 여자친구 '코끼리'양, 귀엽고 깜찍하네

아들 입대하기 전 해프닝이 생각났다. 군대가기 전 시골집에 내려와 있었던 아들놈에게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처음엔 내가 받았더니 두 번이나 말없이 뚝 끊어버리는 전화가 어째 여자인 것 같았다. 해서 다음에 울리는 건 모른 척 그냥 뒀더니 아들이 전화통을 잡았다.

"음, 음…. 너 술 먹었냐? 알았다, 그냥 끊어라."

이렇게 몇 마디 하다 끊더니 계속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한두어 번 예의상 받아 주는 것 같던 아들, 드디어 참았던 울화통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너 죽고 싶냐? 우리 엄마 주무신다. 끊어라."

무슨 조폭처럼 엄포를 넣더니 혼자 중얼거린다.

"아, 이 또라이들이…. 그런데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입대하기 전 휴대폰을 해지한 상태니 어리둥절할 만도 했다.

자는 척, 아들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 놈이 콧등까지 찢고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저렇게 전화를 하면 웬만하면 못이기는 척 넘어가야 하는데. 누굴 닮아 저리 쇠고집일꼬.

그런데 딸을 통해서 입대 후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면회를 가서 확인해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꼬치꼬치 묻는 내게 "엄마 뭐가 그렇게 궁금하세요?" 싱긋 웃으며 시인도 부인도 안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아들 홈피를 해킹했더니 과연 다시 시작한 것 같았다. '우리 코끼리…' 어쩌구 하며 애칭을 쓴 것을 보니 우스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순간 코끼리? 아니 우째 코끼리당가? 코가 되게 큰 아이 아냐? 이런 엉뚱한 호기심이 치받히기 시작하자 참았던 인내심이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아들 커플의 1주년, 선물 보내고 싶은데...

다시 아들 여자친구 홈피로 직행했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들놈한테 받았던 상처가 심했던지 아픈 마음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엿보였다.

홈피 대문에 붙은 사진. 우선 궁금했던 코부터 살폈는데 사진상으로는 코끼리 코인지 아닌지 구별이 잘 되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귀엽고 깜찍하게 생긴 아이였다. 며느리감도 아닌데 마음이 절로 흡족해졌다(정말 못말리겠다).

그런데 그 홈피에서 그 아이가 정성스럽게 만든 '빼빼로' 선물묶음이 선보였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에 아들에게 보낼 선물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쑥스러웠는지 "별 짓 다한다…"고 써붙여 놓으며 처음 만들어 본 것인데 너무 맘에 들게 됐다고 흡족해 했다.

그 밑 방명록, 나도 알고 있는 아들놈 친구가 쓴 댓글이 눈에 보인다.

"인장이 부럽다. 개놈…ㅋㅋㅋㅋㅋㅋㅋ"

하이고, 지난달이 둘이 만난 지 1주년이라는데. 나라도 아들 대신 선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방법이 없네. 입맛 쩝쩝 다시다 보니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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