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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 연기학원에서 강사가 연영과 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의도 한 연기학원에서 강사가 연영과 지망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다음으로 얼굴과 몸 전체를 잔뜩 움츠렸다가 쭉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이른바 '확장'과 '축소' 운동. 이어 눈동자를 돌리고, 눈썹을 움직이고, 콧구멍을 벌렁이고, 입술을 씰룩였다. 하는 학생들이야 심각했겠지만 지켜보던 기자로선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신체훈련 뒤 발성과 발음 훈련이 이어졌다. 함성 지르기, 다음 '아야어여…' 모음에 ㄱㄴㄷ 자음을 붙여 스타카토식으로 발음하기. '외위웰' 같은 모음을 추가한 게 특이했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강 건너 말 말뚝은…' '저기 저 뜀틀은…' 등의 게임도 훈련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이제는 빙 둘러 걷기 시작했다. 편하게 걷기, 빨리 걷기, 늦게 걷기, 기쁘게 걷기, 힘들게 걷기…. 강사가 입으로 기온을 높였다. '섭씨 25도, 30도, 35도.' 땀 흘리며 지친 표정들, '40도'를 넘어가자 한 남학생은 상의를 완전히 벗었다. 다시 기온은 차츰 낮아져 '영하 0도, 5도, 10도…'.

강사가 카세트레코더의 음악을 틀었다. 상황연기 순서. 강사의 상황 설명에 따라 학생들이 즉흥 연기를 펼쳤다. "한강변 풀밭을 걷고 있어, 신선한 바람, … 이크 개똥을 밟았어, 수돗가로 가, 그런데 물이 안 나와, 손에 묻었어, 냄새를 느껴봐… ."

사이사이 강사가 학생들의 연기에 대해 지적했다. "눈치보면 끝이야." "연기의 생명은 디테일이야." "괜한 기교 부리지 마.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연기가 최고야."

마지막은 '인간조각상 만들기'.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각기 다른 배경음악에 맞춰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수업이었다. 음악과 팀을 바꿔가며 몇 번을 계속 반복했는데, 기자가 보기에도 새롭게 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강사의 총평. "B팀은 열정과 생동감이 좋아. 연기가 재미없으면 누가 보냐.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연기를 해야지."

여의도 한 연기학원에서 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복도에서 입시정보들을 나누고 있다.
여의도 한 연기학원에서 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복도에서 입시정보들을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후 1시 10분, 첫수업이 끝났다. 복도에서 몇몇 학생을 만나 "왜 연영과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대부분 한결같았다. "배우가 꿈이거든요." 그 꿈을 위해 최하영(24)씨는 군대를 다녀온 뒤 다시 연영과에 도전한다고 했다. 또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여학생(재수생)은 "원래는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꿈을 바꿨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를 하려면 명문대학을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목표를 연기 쪽으로 바꿔 다시 대학을 들어가려고 해요. 어머니는 아시는데 아버지는 아직 모르시죠. 합격한 뒤 말씀드리면 이해해주시겠죠."

[방배동 C학원]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

25일 토요일 오후 서울 방배동에 있는 C연기학원을 찾았다. 간판에 씌어진 '연극영화 관련학과 입시레슨 전문 스튜디오'란 문구가 선명했다. 유리로 들여다 보이는 세 스튜디오(연습실)에는 20여명의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오종훈 원장은 "항상 스튜디오를 개방해놓고 있어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와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대형 연기학원과 달리 학생 한명 한명을 개별적으로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특히 '스파르타식' 교습을 강조하고 있다.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강사와 학생이 연기 개인교습을 하고 있다.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강사와 학생이 연기 개인교습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천호영
한 연습실로 들어가 보았다. 의자에 앉은 강사 앞에서 한 남학생이 뭔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 "금세기에 만들어진 오페라들은…."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 대사인 듯 했다. 강사가 주문했다. "거기선 꾸미지 말고, 그냥 질러버려." 학생의 대사가 좀 빨라지자 "너무 급해, 누가 쫓아오는 거 아니잖아"라는 지적이 잇달았다.

동작과 대사에 대한 지적으로 연기는 자주 끊겼다. 때때로 학생도 자신의 연기에 대한 의견을 얘기했다. 또는 "그럼 그 다음 감정은 어떻게 이어가죠?" 등을 묻기도 했다. 2분도 채 안 되는 대사를 놓고 계속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강사 구교환씨는 그같은 수업방식에 대해 "연기 실기 수업은 강사와 학생의 공동작업"이라면서 강사의 역할에 대해 "연기는 정답이 없으니 친구와 같이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옆 연습실에서도 개인교습이 진행중이었다. 한 여학생이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고 있었다. 강사의 주문. "그 부분에선 좀 더 흐느끼면서 갔으면 좋겠어." '잔다르크' 연기였다. 실기시험 때 자유연기로 선보일 작품으로, 서정준 원장은 "원래 없는 대본인데 아이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영화 등을 참고해 새롭게 대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연영과 연기지망생을 위한 '족보'도 있다. 특히 국내외 유명 희곡에서 남녀별로 독백을 추린 <103개의 모노로그>는 한 때 연기지망생의 필독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단순 대사 연기보다 작품 전체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경향이라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연기 자체에 대한 선호 경향도 바뀌었다. 이에 대해 서정준 원장은 "대학마다 연기실기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고 전제한 뒤 "예전엔 화려하고 독특한 걸 선호했는데 요즘은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런 연기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대학 입시는 오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 때묻은 연기보다는 꾸밈없는 연기를 더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연영과 지망생들이 각자 자기 연기를 연습하고 있다.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연영과 지망생들이 각자 자기 연기를 연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천호영
"야, 너 무서워하는 표정 한번 지어봐"

또다른 연습실에선 10여명의 학생들이 각자 자기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이렇게 흥분할 게 아니라 내 입장도 좀 살펴주게"라는 대사만을 수십번 반복해서 연습했다. 또 한 여학생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연기하더니 옆 친구에게 "야, 너 무서워하는 표정 한번 지어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 남학생은 탁자 위에 소주병과 종이컵을 올려놓고 술 취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또 한 남학생은 그 소란(?) 속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탭탠스 구두를 신은 채 춤 연습을 하기도 했다.

잠시 쉬는 듯한 학생들은 연습실 구석에 모여 앉아 서로 입시 정보를 교환했다. "ㅎ대를 볼지 ㄱ대를 볼 지 고민 중이야." "ㄷ대는 외모 쪽으로 유명하지 않나? "ㅎ대와 ㄷ대 중 예비 하나는 분명히 빠질 거 같은데."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학생들이 대학 입시전형을 살펴보고 있다.
방배동 한 연기학원에서 학생들이 대학 입시전형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천호영
한 학생이 성적에 대해 묻자 또 한 학생이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내가 알기론 연기 실기 치는 애들 평균이 5등급 정도 될 걸. 그 밑이면 밑이지 높지는 않을거야. 연예인 애들은 그보다 더 바닥이고."

이번에도 학생들 틈에 끼어들어 연영과 지망 이유를 물었다. 답변은 M연기학원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안수빈(19)양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꿈이어서 중3 때부터 연기수업을 받았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밝혔다.

"배우가 되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는 걸 알아요. 꼭 대학을 안 나와도 될 수 있긴 하죠. 하지만 요즘은 대학 경력은 기본이잖아요. 어차피 대학을 간다면, 연극학과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요."

연기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은 10%? 그러나...

올해 연영과 연기 지망생은 대략 6천~7천명 정도. 그 가운데는 뚜렷한 소신을 갖고 착실히 준비하며 연기의 꿈을 키워온 학생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러나 '스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에서, 또 낮은 필기 성적 때문에 실기 시험의 '요행'을 바라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을 비웃을 수 있을까. 우리의 교육제도와 사회풍조가 그들을 그 길로 몰고 간 것을. 게다가 기자가 연기학원에서 만난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하나 같이 진지했다.

여의도 M연기학원의 복도벽, 다소 빛바랜 액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다.

"연기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은 10%. 10%를 100%로 만드는 것은 본인 자신의 열정과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한두 달 남짓. 무대에선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만 현실에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연기교습을 받으며 지금 흘리는 땀방울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바로 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극영화학과 연기전공 입시전형은 어떻게?

연영과 연기 전공의 성적 반영 비율은 대개 수능(학생부 포함) 40-50%, 실기 50~60%. 2년제대학의 경우 실기점수만 100% 반영하는 곳도 있다. 수능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연기만 잘하면 대학 입학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연기 실기 시험 과목은 대학마다 다소 다르다. 그러나 대개 지정연기, 자유연기, 즉흥연기, 특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한양대 등 몇몇 대학은 학교에서 선정한 영화를 관람하고 감상문을 적어내게 하기도 한다.

지정연기란 대학 측에서 미리 지정한 작가나 작품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다. 반면 자유연기는 수험생이 희곡 등에서 한 대목을 자유롭게 준비해 발표한다. 특기는 무용 뮤지컬 노래 탭댄스 등 장르에 제한이 없다.

즉흥연기는 시험장에서 제시되는 단어 또는 상황을 즉흥적으로 대사와 행위 또는 자신의 특기 등을 활용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중앙대의 경우 시험 당일 수험생 자신이 뽑은 연극적 상황카드에 따라 연기하게 한다.

M연기학원의 박종하 팀장은 최근 경향에 대해 "갈수록 즉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정연기나 자유연기는 미리 준비해오니 다들 비슷비슷해 변별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시된 상황에 대한 창의적인 반응을 미리 준비해올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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