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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들을 앞에 두고 있는 서두머리 동네입니다. 사진 왼쪽의 건물은 미곡처리시설(정미소)입니다.
너른 들을 앞에 두고 있는 서두머리 동네입니다. 사진 왼쪽의 건물은 미곡처리시설(정미소)입니다. ⓒ 이승숙
지난 토요일(25일) 오후에 애들과 함께 근처 산에 가려고 나섰던 참이었다. 드넓은 들판길을 달리던 남편이 그랬다.

"저 산 이름이 서두머리야."
"소두머리? 아, 소머리 동네란 말이야?"
"아니 소두머리가 아니고 서두머리."
"그럼 쥐 서자 해서 서두? 그럼 쥐머리란 말이네."
"그래. 저 산 모양새를 가만 한 번 봐. 쥐머리처럼 생겼잖아. 쥐가 너른 들을 향해서 앉아 있는 모양새잖아."

그러면서 남편은 그랬다.

"저 동네도 아주 살기 좋은 동네일 거야. 들판에 곡식이 지천으로 깔렸으니 쥐가 먹이 걱정이 없잖아. 그러니 얼마나 살기가 좋았겠어."

그러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애들도 고개를 돌려 바깥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애들이 반응을 보이자 남편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서두머리 동네에 미곡 창고까지 들어섰으니 이름이 틀린 거는 아닌가 봐. 안 그래도 들판에 먹을 게 넘쳐나는데 쌀 찧는 미곡 창고까지 들어섰으니 완전 쥐 세상이지 뭐야. 그런데 옛 어른들은 이렇게 넘쳐나는 걸 경계했나 봐. 서두머리 반대쪽 산 이름이 '매봉'인 걸 보면 지나친 걸 경계해서 지은 이름 같아."

"아버지, 서두머리와 매봉이 무슨 관계인데요?"

잠자코 있던 아들아이가 물었다.

"응, 먹이가 지천이면 쥐가 나태해질 거 아냐. 돈 많다고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그 집안은 망하는 길이지. 그러니 매가 지키고 있는 거야. 쥐가 천지를 모르고 설치지 말라고 매가 포진해 있는 거야. 우리 풍수의 핵심은 조화와 균형인 것 같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중용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조상님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이었을 거야."

우리 풍수의 핵심은 조화와 균형

올록볼록한 산 앞에 있는 저 자그마한 야산은 '자라'가 엎드려 있는 것 같지요?
올록볼록한 산 앞에 있는 저 자그마한 야산은 '자라'가 엎드려 있는 것 같지요? ⓒ 이승숙
그러자 딸아이도 끼어든다.

"아버지, 우리 한의학도 조화와 균형을 이야기해요. 병은 균형이 깨져서 나타나는 거예요. 한의학은 사람을 작은 우주로 보는데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기는 거래요."

딸아이는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지난 대입 수시모집에 한의예과를 지원했었다. 그때 나름대로 공부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방구가 잦으면 똥을 째리게 되고 웃음이 잦으면 울음이 따라온다'고 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이 놀고 있는 우리 형제간들한테 엄마는 만날 그러셨다.

"과타(과하다), 과타. 방구가 잦으면 똥을 째리게 된다. 인자 고만 해라."

엄마 말을 안 듣고 계속 놀던 우리들은 꼭 누군가의 울음으로 놀이의 끝을 맺곤 했다. 즐거운 놀이도 입씨름으로 끝날 때가 많았다.

항상 문제는 과욕에서 비롯된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그것을 경계하고자 '과유불급', 즉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란 말을 해 주신 것이다.

너른 들판을 앞에 둔 쥐는 먹을 게 많아서 좋을 듯하지만 옛 사람들은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보았다. 차고 넘치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 근처에 매봉을 두었다. 조화와 균형이 우리 풍수가 지향하는 바였다.

지금 세상은 조화와 균형이 깨졌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균형이 깨어지면 무리가 따르고 탈이 난다. 가진 자는 점점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 일어서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서두머리 옆에 매봉을 두어서 지나침을 경계했던 우리 옛 어른들의 지혜가 새삼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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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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