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사랑의 일기 재단(이사장 문병호)이 지난 11월 24일 개최한 '2006 사랑의 일기 큰잔치'에서 '일기쓰기 모범학교'로 특별상을 수상한 학교와 '교사부문 지도상'을 받은 선생님이 있어 화제다.
전남 광양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진월초등학교가 그 화제의 학교. 이 학교 4학년 전교생 11명은 11월 24일에 서울에서 개최된 시상식에 참석, 노정혜 서울대 교수의 초대로 말로만 듣던 서울대학교를 구경하며 점심식사도 했다. 또 기독교 단체인 사랑의 단체 후원으로 63빌딩에 올라 수족관과 전망대도 구경했다. 그야말로 일기 잘 써 상도 받고 서울 구경도 톡톡히 한 셈이다.
"처음에는 무척 귀찮았어요. 그런데 선생님과 함께 일기쓰기를 하다 보니 우울할 때는 기분이 좋아지고 또 기쁜 일도 자주 생겼어요."
축구 선수가 꿈인 4학년 백대선군은 11월 30일 학교를 방문한 기자에게 일기를 쓰면서 느꼈던 장점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선생님과 함께 나누는 속마음 일기
사실 이들 진월초등학교 학생들이 '사랑의 일기 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박성수(52·여) 선생님의 노력이 컸다. 박 선생님은 '사랑의 일기'를 통해 귀찮고 짜증나는 숙제에 불과했던 일기를 학생들과의 대화의 창구로 탈바꿈 시켰다.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과 부산에서 교편을 잡던 박 선생님은 경남 창원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범숙학교'에서 3년여 동안 근무했다. 그리고 전남 지역에서 다시 임용시험을 치른 후 지난 2005년 3월 1일, 첫 부임지로 광양 진월초등학교에 부임했다.
"30년 전 첫 교사 시절로 되돌아 온 느낌이었어요. 특히 햇병아리 교사 시절의 초심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박 선생님은 30여 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3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일기쓰기 둘째, 배고픈 아이 밥 주기 셋째, 화장실 청소 직접 하기가 그것. 어렵고, 지저분한 것을 선생님이 손수 해결하면 학생들의 마음이 순화되고 '아,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진짜 사랑하시는구나'하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사실 이 학교에 부임해 보니 70~80% 학생들이 결손 가정이었습니다. 편부, 편모 또는 조부모 슬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목이 메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부임하자마자 소아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4~6학년을 중심으로 합창단을 조직했다. 말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말을 되찾고 어린이들 개개인의 여린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내면의 아우성을 듣기 위해서는 음악치료를 통한 심리치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어떻게 대도시 큰 학교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당초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진월초등학교 합창단은 올해 개최된 전라남도 도민합창대회에 참가해 우수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진월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교감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 등 모든 선생님들의 협조와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사실, 30년 경력의 선생이라곤 하지만 전남교육계에선 '초짜' 선생님이나 다름없는 저에게 교육관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박 선생님이 맡고 있는 4학년 11명은 일 주일에 5일 동안 꼬박꼬박 일기를 쓰고 있다. 학생들은 일기를 통해 말 못할 고민을 선생님께 털어놓기도 하고 집안 대소사는 물론 자신들의 신변잡사까지 기록해 온다.
너희들은 소중하다, 소중하다
박 선생님은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소중하다, 귀하고 귀한 존재들이다'라는 장문의 답장을 써준다. 상투적인 칭찬의 말이나 판에 박힌 충고나 조언은 될 수 있는 한 삼간다. 이처럼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공감하고 이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박 선생님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시절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님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셨어요. 전쟁을 겪고 나서 정신병을 앓으셨습니다. 저희 형제 자매들은 물만 먹고 공부해야 했어요. 제 유년 시절은 말하자면, 눈물젖은 빵을 씹던 시절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번 수상이 어린이들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의 힘을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자신들과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을 만난 어린이들은 학습의욕도 부쩍 높아져 컴퓨터 자격 취득이나 한자 검정 급수시험에 척척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박 선생님은 "이러다가 우리 아이들 전부, 서울대학교에 가면 어떡하죠"하며 환하게 웃었다.
박 선생님은 30여 년 동안 사랑의 일기쓰기를 실천하며 학생들에게 성폭력 피해, 범죄, 가출, 왕따, 학교폭력, 자살 충동 등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게 했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제가 대안학교에 근무하면서 느낀 것인데요, 청소년들의 상처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싹이 자라온 것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이들을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있는 힘껏 사랑할려고요. 설령 언젠가 제가 이 녀석들 곁을 떠나더라도 저와의 뜨거웠던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 누구를 만나고 그 어떤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박 선생님은 자신이 서울, 부산, 창원, 광양에서 교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배려하고 격려해 준 남편 이천복 교수(부산경성대)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전했다.
10년 후 청년이 될 진월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선생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어느 누구도 해치지 못하고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박 선생님은 "지금 당장 생을 마감해도 부끄럽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일생에 잊혀지지 않는 스승이 되기 위해 남은 교직 생활 동안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희망교육21(www.ihop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