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2일 파주 헤이리에서 열린 조영남 시독회.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조영남.
ⓒ 나영준
가수 조영남이 또 책을 낸다.

지난해 조영남은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이란 책으로 거의 '맞아죽기 직전'까지 갔다.

출연하고 있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접어야 했고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또 책을 낸다니, 이번엔 어떤 각오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랑'에 대한 책이란다.

@BRI@<어느날 사랑이>(한길사) 출판을 앞두고 조영남은 지난 2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시독회(試讀會)라는 이색적인 행사를 가졌다.

시독회. 그리 흔한 행사는 아니다. 출판 전 가제본된 상태에서 독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일종의 품평회라고 할까. 그간 전자책의 경우 온라인 상에서 가끔 하긴 했지만 저자와 독자가 실제로 얼굴을 맞댄 행사는 드물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인터넷으로 신청한 독자 30명과 지인들이 함께 했다.

이날 기자는 행사장을 찾기 위해 파주 헤이리를 헤매야 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에서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승용차 창문을 열고 같은 목적지를 물어왔다. "나도 찾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럼 같이 가자"며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이 사람 낯이 익은 얼굴이다.

"혹시… MBC의 이상호 기자 아니십니까?"
"하하, 맞습니다."


가수 조영남은 친구가 많다고 한다. 친구는 나이 불문, 성별 불문이다. 이상호 기자 역시 그 지인들 중 한 사람으로 이날은 취재가 아닌 행사의 사회를 맡기 위해 참석했다.

그런데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3시가 됐는데도 조영남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10분을 넘겨서야 '말 많고 탈 많았던' 조영남이 등장했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 이렇게 막힐 줄 정말 몰랐다"며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지각 때문일까, 행사를 시작한 후에도 조영남은 좌불안석이었다. 사실은 책 때문이었겠지만.

실명으로 쓴 사랑책, 이번엔 진짜 맞아 죽을까?

▲ 시간이 흐르자 독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조영남씨.
ⓒ 나영준
▲ 이 날의 사회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유명한 이상호 기자가 맡았다.
ⓒ 나영준
<어느날 사랑이>는 조영남이 쓰겠다고 한 게 아니라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한 작업이었다. 조영남의 인간적인 면을 접하면서 출간을 제의했다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자전적 풍속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시독회의 처음을 열었다.

이어 "영화에 시사회가 있듯이 책도 독자에 의해 콘텐츠가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종의 북 콘서트 형태의 시독회를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짧은 소개말 후에 드디어 조영남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답지 않게 에둘러 말하면서 단어를 고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원했다. 이전 <맞아 죽을…>이란 책을 시독회도 없이 했다 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일동 웃음). 또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라 실명이 나온다. 주위에서 이번엔 진짜 맞아 죽는다고 하더라. 고민을 하다 가제본을 돌려 정말 반응이 안 좋다면 책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역시 조영남은 조영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의 너털웃음이 돌아오고 있었다.

누군가 "도대체 그렇게 연애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이냐? 부럽다"고 말하자 조영남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여성들과 쉼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게 젊은 여자를 잘 사귀는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다소 부러움섞인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돈이 있다는 거(일동 폭소). 여자들이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을 제공하는 것. 아무리 잘 생기고 노래를 잘 해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면 여자들은…. 농담이다. 조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웃음)."

하루 아침에 '이완용 친동생'된 그 때 그사건

▲ 조영남의 자필 원고.
ⓒ 나영준
<맞아 죽을…>로 인한 필화(?) 사건에 대해서도 조영남은 자신만의 직설적이고 낙천적인 화법으로 반추했다.

"그 순간 앞이 캄캄했다. 한순간에 대한민국에서 '이완용 친동생'이 됐다(일동 웃음). 그런 일을 하기라도 했으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그런데 그 다음 날 정치인 ×××씨가 뇌물을 먹고 5년 형을 받고, 그 다음 날엔 마이클 잭슨이 어린이 성추행으로 잡혔더라. 거기에 비해 나는 검찰·경찰에서 오라고 하진 않으니 다행이다 싶더라. 어쨌건 좋은 경험을 했다."

사실 조영남은 컴퓨터나 인터넷을 '전혀' 할 줄 모른다(이상호 기자는 조영남이 '컴맹'이기 때문에 작년에도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책도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에 적어 출판사에 넘기는 육필 작업을 했다.

이날 시독회 자리에서는 한창 편집 작업 중인 4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공개됐다.

한 여자와 평생을 살았고 무려 아홉 차례나 아내가 만삭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사랑을 논할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나의 사랑 점수가 궁금하다. (<어느날 사랑이> 머리말)

이외로 다소곳한 머리말 다음에는 조영남의 사랑사가 이어졌다.

푸른 빛이 감도는 아련한 첫사랑에는 가슴 아팠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역시 솔직담백하게 서술됐다. 그리고 그 이상은… 모른다. 이 날은 시독회 자리였으니까.

"기꺼이 욕먹겠다, 그러니 책 좀 읽고 욕해라!"

이날 행사에는 이번에 출간될 책의 편집자와 작년 <맞아 죽을…>의 편집자가 모두 참석했다. 그들의 요구는 똑같았다. 내용이 잘못됐다면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 하지만 제발 '책을 읽고 난 후'에 이야기하라는 것.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진 조영남의 멋들어진 노래가 이어졌고 지인들의 짤막한 말들이 이어졌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처음 영남이 형이 책을 또 낸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혼자 놔두어도 하룻밤을 꼬박 새울 수 있는 사람이 둘 있다. 한 사람은 황석영 선생님, 또 하나는 조영남씨다. 상대방이 잠을 자도 기승전결을 세워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다. 외모는 별로 놀랄 일이 없는 이지만(일동 폭소), 한편 자기 자신을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가진 이다. 일본에 대한 시각도 그 놀라운 자기 객관화의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그렇다."

최윤희 카피라이터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런데 가제본된 책을 읽고 '아유, 이거 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는 물론 너무나 솔직하고 정직하다. 한편 제목은 너무 교활하다. 머리가 너무 좋아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식으로 뭉뚱그렸다(일동 폭소). 대박이 날 것으로 믿는다."


흔히들 조영남에게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리고 조영남은 스스로 자신의 삶이 '사랑의 투쟁사'였다고 말한다. 이상호 기자는 '자유인' 조영남이 걱정된다고 했다. 제각각의 기준에 따라 유죄냐, 무죄냐만을 따지는 우리 사회가 그를 품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리라.

이제 조영남이 사랑과 연애에도 자유주의자인지 아닌지, 그의 책이 나오면 알게 될 터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영남에게 어떤 선고를 내릴지도 그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