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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가댁 식구들 손을 보면 우선 손가락이 짧고 굵다. 또 손바닥은 매우 넓고 커서 웬만한 사람들 얼굴을 가릴 정도다. 엄마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가끔 아버지와 연애하던 때를 회상하면, 엄마는 손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당시 난 손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굵은 편이어서 내가 보기에도 좀 창피했었어. 그래서 너 아버지랑 만날 때는 손에 항상 신경을 썼지. 커피를 마실 때도 손은 되도록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는 편이었고."
당시 엄마의 최대 콤플렉스는 당연히 손. 처음에는 혹시 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보고 놀라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엄마의 손을 보둠을 수 있을만큼 더 크고 거칠었으며, 그것은 조심스런 엄마에게 큰 위안이 됐다고 한다.
두 분이 처음 손을 잡았을 때 느낌은 어땠을까? 난 가끔 연애시절 서로의 손을 잡고 두 분이 느꼈을 묵직함을 가늠해 보곤 한다.
여러분 제 손 예쁘지 않나요?
결혼 후 엄마는 수줍고 부끄러움 많은 아가씨에서 이것저것 눈치보지 않는 소탈한 아줌마로 변했다. 동시에 손에 대한 인식도 점점 달라졌다. 크고 굵은 그녀의 손은 언제나 적재적소에 알맞게 쓰이고 있었다.
김장을 담글 때도 남들보다 몇 배는 바른 속도로 양념을 섞을 수 있었고, 무거운 물건도 척척 옮겨내는 힘의 원천이 됐다. 나는 아직도 중학교 1학년때 엄마와의 팔씨름 대결에서 진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엄마의 손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그러니까 12년 전 일이다. 당시 MBC에 '10시 임성훈입니다'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엄마는 당시 TV 출연에 한창 재미를 느끼던 터라 자신의 손을 소재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나의 자랑'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방송이었는데, 엄마는 본인의 손을 거침없이 공개하는 용기를 보였다. 프로그램에서 '클로즈 업'된 손은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공개됐고 그 손은 또렷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결혼 전 그저 부끄럽기만 했던 손은 이제 그녀가 자신있게 자랑하는 상징이 돼버렸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엄마는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당당히 말했다. "여러분 제 손 정말 예쁘지 않나요?"
못생겼지만 따뜻한 손
엄마의 거친 손은 못생긴 외형과는 달리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나보다. 그 손은 많은 사람들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엄마는 내게는 비밀로 한 채 어디론가 매일 출근을 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그곳은 집 근처에 위치한 한 사회복지단체였다. 식구들 모르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엄마는 장애인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김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있었다. 엄마의 거친 손은 다른 사람들의 식어가는 손을 따뜻하게 잡고 있었다.
또 몇 년 전에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한 고등학생의 후원자가 되어 종종 선물과 용돈을 챙겨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끔 난 그 친구를 위해 손수 선물을 고르는 엄마의 투박한 손을 보곤 한다.
엄마가 그렇듯 나 또한 굵고 큰 손을 자랑한다. 친구들이 붙여준 '솥뚜껑'이라는 별명답게 그 손이 가진 힘 또한 엄마를 닮았나 보다. 이제 내겐 그 따뜻한 온기를 닮는 일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김현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입니다.